배려심(配慮心)
네가 나를 보고 사람이라고 하니까, 나도 너를 보고 사람이라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제법 나이 든 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으레 나오는 말이, “우리가 어렸을 땐 왜 그리도 못 살았을까? 끼니조차 때우기 힘든 세월이었다.”는 푸념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 있었지만 점심을 굶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선생님은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줄반장이 앞장서서 십시일반, 친구들 도시락에서 한 젓가락씩 자신의 도시락 뚜껑에 밥을 모아 함께 먹도록 했다. 나이 어린 학생이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린애가 도시락 냄새를 맡고 밖으로 나가면서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를 상상해 보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밥이 없으면 라면이나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신세대는 부모나 조부모의 어려웠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우리 민족이 단군 이래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적이 없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0번째 전후의 경제 강국이고 먹고살기 좋은 국가라고 할지라도 모든 국민이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활비가 없어 일가족이 극단의 경우를 선택하거나, 홀로 고독사 후 수개월이 지나 사체가 발견되는 일들이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결손아동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명대사가 히트를 치기도 했는데, 이것도 역시 먹고사는 문제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는 말이 나왔을까?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도 아마 없을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지구는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해 주었다. 나 혼자만이, 내 가정만이, 내 나라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시대는 지나갔다. 공동체 모두가 하나가 되어 더불어 살아갈 때만이 인류평화와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정치권을 양분해 온 이념논쟁도 따지고 보면 먹고사는 문제의 근본 해결 방법의 차이에서 출발한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 이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이른바 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의 대립각에서 공산주의와 자유 자본주의가 싹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이념논쟁은 오늘날 각국의 정치권에서 진보냐, 보수냐로 나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하면 자국민이 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최상의 정책을 집행하는 것과 연결될 것이다. 여기에서 공산주의나 자유 자본주의, 진보나 보수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념이나 정치제도와 관계없이 자국민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선이요 최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은 세계의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를 얻은 자랑스럽고 대단한 민족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아직도 이분법적인 이념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국내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간 외교문제에 있어서 좀 더 의연하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내로남불」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의견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당장 적대감을 갖고 배척하는 우리네 정서는 이제 없애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단어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영어 단어이다. 영어에서 ‘다르다’는 ‘different’이고, ‘틀리다’는 ‘be wrong’으로 번역된다. 즉,‘틀리다’는 ‘나쁘다’는 의미와 상통하기 때문에 ‘다르다’와는 다르게 사용해야 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주장에 반하는 의견을 내세우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자신의 의견과 다를 뿐이지 결코 틀린 것은 아닐 텐데 그냥 ‘틀리다’고 단정해 버린 것이다. 상대방이 개인이든 국가이든 간에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상대방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까?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려일 것이다.
개인, 가정, 사회 그리고 국가 간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는 활기 넘치는 배려심이 있을 때 지구는 평온하고 세계평화는 유지되지 않을까?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이 생각난다. “네가 나를 보고 사람이라고 하니까 나도 너를 보고 사람이라고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