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

by 동천 김병철

언젠가 고향친구와 막걸리를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친구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말을 해 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주저함 없이 그 자리에서, ‘잘 먹고 잘살아라!’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새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말은 결코 없을 것이다. 수많은 주례 선생들이 미주알고주알 주례사를 늘어놓지만 결론은 ‘잘살아야 한다!’는 한마디로 집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잘살아라!’ 이 한마디로 주례사를 갈음하기는 왠지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살을 붙여보기로 하고 궁리 끝에 「신랑 신부, 잘 먹고 잘살기 바란다.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둘이서 공동목표를 향해 동행하면서 영육간에 건강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곧 대화다. 또한, 부부는 공동목표를 향해 동행하는 공동체다. 공동목표인 행복한 ‘비둘기집’을 둘이서 한번 멋지게 만들어 보기 바란다」 는 내용으로 주례사를 마쳤다.

우리들은 ‘행복한 가정’이나 ‘평화’를 들먹거릴 때 으레 비둘기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비둘기가 인간세계에서 ‘행복한 가정’이나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얀 비둘기가 더 친근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건 왜일까? 일본의 큰 사찰이나 유럽의 공원 등지를 산책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무리의 비둘기 떼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원에서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을 보면 무척 한가롭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에게 비둘기는 천사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왜 수많은 날짐승과 길짐승 중에서 비둘기가 ‘행복한 가정’이나 ‘평화의 상징’이 되었을까? 사실 난 그 연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비둘기들의 짝짓기와 연관이 있다는 말을 언젠가 조류학자로부터 들었을 뿐이다. 비둘기는 한번 짝짓기를 하면 상대가 죽고 없어도 평생 정조를 지키며 다른 비둘기와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비둘기도 인간사회처럼 ‘내로남불‘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는 대체적으로 비둘기도 우리처럼 ’일부일처제‘라는 얘기일 것이다. 오직 나만 사랑해달라는 인간 욕심이 비둘기에게 감정이입 되어 어느새 비둘기가 지조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비둘기집’을 꾸리려면 부부는 서로 배신하지 않고 평생 정조를 지키며 백년해로해야만 한다. 이럴 때 동행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따라서 동행하지 못한다면 ‘비둘기집’은 그림의 떡이다. 비둘기의 동행을 우리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1980년대 후반 모 가수의 ‘동행’이란 유행가가 한국 중년 부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크게 히트 친 적이 있다. 그것은 노래 멜로디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가사 내용이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노랫말을 살펴보면 동행을 원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고 슬픔을 함께 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는 동행자는 친구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겠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볼 때 연인이 옳을 것이다. 또한, ‘동행’(同行)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부부나 연인이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다.

동행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곳으로 길을 같이 가거나 오거나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함께 가고 오더라도 그것은 결코 동행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오가는 것은 일정한 방향, 즉 공동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위 ‘동행’(同行)이라는 노래에 앞서 1970년대 중반 ‘비둘기집’이라는 노래가 통기타 가수를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적도 있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그렇게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며 서정적일 수가 없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신혼부부가 ‘비둘기집’을 짓고 백년해로하며 동행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비둘기가 늘 암수 짝을 지어 24시간 동행하고 있는 것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공원 등지에서 비둘기가 떼지어 노는 것을 볼 때면 언제부터인가 비둘기 머릿수를 하나 둘 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짝수끼리 놀고 있으면 ‘짝 잃은 비둘기가 없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홀수일 경우엔 ‘누군가가 짝을 잃었구나’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분명 비둘기처럼 서로 의지하고 배신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공동목표를 향해 평생 동행함으로써 참다운 가정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2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노아가 대홍수 때 비둘기를 날려 보낸 후 7일 만에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온 것을 보고 홍수가 그친 것을 알았다는데 연유하고 있다.

또 하나는, 로마시대 전쟁이 끝났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데 비둘기를 사용했다는데서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특히, 세계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이 사용한 심벌이 비둘기였는데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UN이 이어받으면서 ‘평화의 상징’이 흰색 비둘기로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비둘기는 ‘행복한 가정’이나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부가 비둘기처럼 동행한다는 건 인간사회에 있어서 최소한 가장 기본적 조직인 가정의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대학(大學)과 명심보감 치가편(明心寶鑑 治家篇)에 의하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의미로 오늘날 너도나도 가훈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내 가정이 화목하고 잘살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가정만 잘살고 행복하면 된다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에 집착할 경우, 사회적 역기능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가 동행하듯이 가정은 지역사회의 공동목표를 향해, 지역사회는 국가의 공동목표를 향해, 그리고 국가는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향해 서로 손잡고 동행할 때 평화롭고 건전한 사회가 될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가정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우주 삼라만상으로까지 동행의 범위를 확대하고 싶다. 이는 지역사회공동체·각종 학교와 종교단체·회사 등 수많은 사회조직이나 단체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목표를 향해 동행할 때 비로소 평화가 정착되고 공생·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상대방 조직이나 단체에 비해 월등하다는 생각이 강할 경우엔 결코 동행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호남 지역감정이나 종교적 갈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일류대학이나 일류기업 등도 마찬가지다. 지연이나 학연 등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나만 잘났고 옳다는 집착에 빠진다면 동행은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기업도 자국 내 기업끼리의 동행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 기업과 동행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즈음 웬만한 세계적인 대기업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은 국가 내 사회 조직간 동행뿐만 아니라 국가끼리의 동행도 매우 중요시되고 있다. 현대는 이른바 글로벌 사회라고 한다.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한 국가만 잘 먹고 잘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강대국이라고 해서 약소국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할 경우 세계평화는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강대국은 강대국대로 약소국은 약소국대로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세계질서는 바로 설 것이다.

이와 같은 인위적인 사회조직끼리 동행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지구상에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무생물까지도 동행해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환경보존을 위해 일하는 국제기구 ‘그린피스’의 활동은 환경과의 동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억제운동’이나 ‘이산화탄소 감축운동’은 무생물과의 동행을 잘 말해주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부의 동행이든 사회단체의 동행이든 국가의 동행이든 자연환경과의 동행이든 일단 동행하려면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配慮)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세계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미증유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과 동행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며 또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손에 손잡고 동행할 때 행복하고 평화로운 지구촌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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