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확실히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누구나 백세까지 살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어린 시절엔 남녀를 막론하고 한 동네에서 60세를 넘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회갑잔치를 성대히 열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회갑잔치는 곧 동네잔치가 되었다. 칠순잔치도 하지 않는다는 요즈음 회갑잔치를 한다고 하면 아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은 뻔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퇴직 후 편안한 노후 생활을 꿈꾸는 사람보다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과거 직장동료나 친구들로부터 좋은 회사에 재취업했다느니, 창업하여 제법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느니, 코이카나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람을 찾고 있다느니,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결혼을 잘해 아내가 전문직으로 활동하고 있어 골프 등 취미생활로 소일하고 있다는 말들을 들을 때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무능력하게 느껴져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었던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나도 퇴직할 때 인생 2막을 멋지게 장식할 준비를 하고 사회에 나왔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해 얼마간의 돈이 마련되면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아내와 둘이서 국내여행은 물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해외여행도 맘껏 다니면서 멋진 노후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학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약 5년간 공작기계 전문 판매 무역회사에서 경영지원 관리이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했다. 일본·대만·중국·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를 두루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스도 멋지게 성사시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취감과 행복감도 얼마 가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고향 1년 후배로서 결혼하기 전 우체국에 근무했고, 결혼과 동시에 퇴직하여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우리가 결혼하던 1980년만 해도 여자가 결혼하면 살림에 전념하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만 해도 남자는 바깥 생활, 여자는 집안 살림 잘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상이었다. 요즈음엔 맞벌이 가정이 대세지만 그때만 해도 여자가 결혼 후 계속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게 보았던 게 사실이다. 우리는 박봉의 외벌이 가정이었지만 아내가 알뜰살뜰 살림을 잘 꾸렸고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남매가 큰 탈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갖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무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왔다. 거기다가 시동생들과 함께 살며 뒷바라지하여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된 시어머니도 평생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아내와 대화 중, ’ 아무개 아내는 약사인데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 ‘, ’ 누구 아내는 아직도 교사로 재직 중인데 월급이 얼마씩 나온다더라 ‘ 등 무심코 내뱉는 말이 아내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아내는 서운한 표정으로 ’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아느냐?‘고 되묻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믿고 열심히 살아온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와 결혼 후 40년을 오직 아내 혼자서 크고 작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었는데 그런 아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 ’ 여성시대‘에서 가사노동의 경제가치, 즉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를 월급으로 환산하여 360만 원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전업주부로서 아내의 가사노동 가치를 과소평가한 자신을 되돌아봤지만, 전업주부의 고충을 몸소 알게 된 것은 재작년 아내가 많이 아플 때이다.
5년 전 아내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시술을 받았는데도 계속 무릎이 아프고 허리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2년 전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더니 폐경기 이후 여성들에게 쉽게 나타나는 척추측만증이란다. 엎진 데 덮친 격으로 척추관 협착증과 허리 디스크까지 한꺼번에 왔으니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걸을 땐 한쪽으로 몸이 완전히 기울어져 보행이 힘들고, 조금만 걸어도 허리 통증으로 아무 데나 앉아야 한다. 보통 사람보다 심한 척추측만증과 척추관 협착증이다. 게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손주들 뒷바라지 때문에 아내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 아내를 위해 나의 노후 생활을 다시 수정해야 했고, 어렵게 잡은 무역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40년간 아내가 담당해 온 전업주부 역할을 내가 맡기로 한 것이다.
매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아내 허리 마사지와 간단한 맨손체조를 한 후 약 40분간에 걸쳐 집안 청소를 한다. 때마다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 후에는 설거지를 한다. 이틀에 한 번은 빨래, 일주일에 한 번은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대청소를 한다.... 그동안 아내가 해왔던 전업주부의 역할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전업주부가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하루하루의 일과가 너무나 힘들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퇴직 후 재취업이나 취미활동, 봉사활동 등 멋진 노후 생활은 꿈으로 끝났다. 이제 우리 집에 전업주부로 재취업한 것이 그 무엇보다도 값진 노후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아내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다. 전업주부인 나를 보고 아내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앞으로도 생을 다하는 그때까지 아무리 힘들더라도 사랑하는 아내를 대신하여 전업주부의 역할을 착실히 잘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