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결혼, 장례문화를 되살리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생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온 것은 아마 관혼상제
(冠婚喪祭)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반적으로 관례(冠禮)는 청소년이 머리에 관을 쓰고 행하는 성년식, 혼례(婚禮)는 결혼식, 상례(喪禮)는 장례식, 제례(祭禮)는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말한다. 관례나 제례는 지방마다 집안마다 달리 행해지고 있고 점차 퇴색되고 있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지인들의 혼례나 상례는 수시로 참석하여 눈으로 보기 때문에 쉽게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이 들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다녀올 때면 왠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친척과 친구 결혼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친구 자제분이나 지인의 결혼은 눈도장을 찍고 식사하기 위해서 참석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골에서 중학교 과학 교사인 손아래 동서의 둘째 딸 결혼식이 있어 다녀온 적이 있다. 처조카 결혼식이라 축의금은 물론, 폐백 때 건네줄 봉투도 따로 마련했다.
그러나 어쩐 영문인지 폐백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다가 결혼식도 주례 없이 신랑 신부 둘이 말 농담 같은 걸 주고받으며 끝나버렸다. 돈 봉투를 하나 세이빙해서 좋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하고 웃음꽃이 활짝 핀 그런 보기 좋은 결혼식처럼 보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왜 우리 고유의 전통 결혼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인 내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몇 년 전 결혼한 우리 아들딸 때만 해도 예식장에서 결혼 후 우리 고유의 결혼식 전통의 일부인 폐백이란 의식을 반드시 치렀다. 우리 전통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일종의 아쉬움처럼 생각된 폐백이다.
신부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채 연지곤지 단장 후 족두리를 쓰고 다소곳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차려입은 신랑이 엄숙하고 경건한 포즈를 취하고 시댁 어르신들에게 정중하게 신고식 예를 갖추는 모습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런 폐백 풍습이 변하여 신랑 신부의 가까운 친척 모두 참석하는 모습으로 발전하다가 요즈음엔 아예 폐백을 하는 결혼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다.
결혼식은 그렇다 치고, 장례식은 또 어떤가? 내 아버지는 1986.2. 별세하셨다. 아버지가 운명하신 그날 새벽 위급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행기를 타고 고향 집에 내려갈 생각으로 택시를 잡았는데 운전기사가 하는 말이, 미국 망명 생활을 마친 김대중 선생이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때문에 너무나 복잡해서 택시가 공항에 갈 수 없단다. 할 수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 정도 걸쳐 도착하니 아버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땐 장례식이나 병원 영안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고인이 살던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20대 중반에 당한 부친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하나둘 우리 고유의 전통 장례 절차를 가르쳐준 대로 따라서했던 기억이 난다. 굴건제복을 입고 빈소 앞에 앉아 있는데 입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 팔은 제대로 옷을 입지 못하고 그냥 밖으로 내놓고 있어야만 했다. 염을 마치고 나서야 상복을 제대로 입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맏상제라 2박 3일 동안 뜬눈으로 빈소를 지켜야만 했고, 조문객을 배웅할 때도 대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삼시세끼 때가 되면 메를 올리고 곡(哭)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장지에 갈 때는 영구차 대신 상여꾼들이 상여를 매고 만장을 들고 상여가(喪輿歌)를 불렀다.
지금 생각해 봐도 한 집안, 한 지방의 장례 절차이지만 왜 그리 까다롭고 엄격했는지 모른다. 그 후 3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병원 영안실에서 검정 양복에 완장을 차고 아주 편리하게 장례를 치렀다. 밤 11시 이후엔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기 때문에 우리 형제 모두 마음 편히 잠도 잘 수 있었다. 때마다 메를 올리거나 곡(哭)을 할 필요도 없다. 망자(亡者)를 위한 장례식이 아니라 상주들을 위한 장례식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버지의 전통 장례식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 장례식 때처럼 상주들이 굴건제복이 아닌 검정 양복에 완장을 차는 건 우리의 전통 장례 풍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또한, 매장 풍습이 많이 사라지고 도농(都農) 할 것 없이 90% 이상 화장하여 유골은 납골당에 모신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일본 장례 문화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장례식 때 상주들이 변장하는 풍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데, 망자(亡者)가 살아있는 사람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우리 고유의 굴건제복은 흔적도 없고 일본식으로 검정 양복에 완장을 차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결혼식이나 장례식만큼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지키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왜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우리 전통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않고 있을까?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상술(商術)에 따라 국적도 족보도 없는 장례·결혼 문화가 판을 치고 있고, 우리 고유의 풍습은 온데간데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접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이른바 MZ세대들이 이태원에 모여들어 일어난 사고라는데, 핼러윈 축제가 무엇인가? 핼러윈은 아일랜드 켈트족의 ‘삼하인‘이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 삼하인‘은 죽음의 제왕인 샤먼을 섬기는 의식으로 당시 사람들은 ’ 성인(聖人)의 날‘ 하루 전날인 10월 마지막 밤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생각하여 귀신을 쫓기 위해 기괴한 분장을 하며 즐기는 풍습이다. 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이런 다른 나라의 핼러윈 축제를 즐겨야만 하는 건지?
나는 20여 년 전 일본 교토에서 일본의 사회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얼마간 체류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본인들의 결혼식은 너무나 엄숙하고 경건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결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에서 그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의식에 따라 결혼식을 올린다.
참석자는 양가 부모 형제를 포함하여 30명 전후이며, 많아야 50명 내외이다. 결혼식엔 부모 형제·삼촌뻘 친척 등 극소수만 참석하며, 사촌은 불참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2차 뒤풀이, 소위 연회석에는 신랑 신부의 친구나 직장 동료 등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데, 그것도 반드시 초청장을 받아야 가능하고 자신의 명찰이 있는 좌석에 앉아야만 한다.
축의금은 그날 식사 대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면 족하다. 호텔의 경우 식사비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3만∽5만 엔 정도 축의금을 내야만 한다. 축의금이 곧 자신의 밥값인 셈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속하게 변해가는 사회에서도 그들의 이런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현재진행형임을 볼 때 솔직히 부러울 수밖에 없다.
조상숭배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땐 가가호호(家家戶戶) 있던 신주(神主) 단지가 근대화라는 미명 하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지만, 우리가 전해준 그 문화를 일본 사회는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내가 살던 교토의 원룸 근처 옆집 할머니가 오찬을 함께 하자며 나를 초대하여 간 적이 있다. 할머니의 며느리가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차 한잔하자면서 할머니가 직접 차를 내렸다. 처음 내린 차이기에 손님인 내게 먼저 건네줄 걸로 생각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할머니는 그 차를 들고 방 안쪽에 있는 신줏단지로 가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바치고 왔다. 그리고 두 번째 내린 차를 내게 건넸다. 손님보다 돌아가신 영감, 조상신을 먼저 모시는 게 그들이다. 우리의 과거 신줏단지 문화를 일본에서 볼 수 있다니?
일본 장례식에도 참석한 적이 있는데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검정 양복에 완장을 차고 있는 건 우리랑 비슷하지만, 일본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박 2일 장례를 치른다. 망자의 자녀들이 먼 거리에 살거나 해외 거주하여 장례식장 도착에 시간이 걸린다면 반드시 지방자치단체 장(長)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만 장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조문객은 “쯔야”(通夜)라고 하여 그날 밤은 망자를 위해 기도하며 뜬눈으로 지새워야만 한다. 얼굴을 내밀고 봉투나 하나 건네면서 눈도장만 찍으면 그만인 우리네 장례식은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매장은 천황만의 특권이며, 그 외 일반인은 모두 화장해야만 한다. 조의금은 망자가 쓸 수가 없어 최소한의 금액으로 성의 표시만 하면 된다. 보통 3천∽5천엔 정도 하면 족하다고 한다. 축의금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우리의 결혼이나 장례 문화가 더 이상 상술에 놀아나지 않고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민관이 협력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본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요즈음은 전통한복 대신 개량 한복을 입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혼례복이나 상복도 현대 감각에 맞게 만들어 입으면 어떨까?
가령 과거의 전통 혼례복이 너무 비싸고 거추장스럽다면 각자의 취향에 맞는 가벼운 개량 한복, 그리고 면사포 대신 족두리를 머리에 올리고, 고무신이나 나막신을 신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례식 땐 일본식으로 검정 양복과 넥타이를 매고 완장이나 상장(喪章)을 하는 것보다 남녀 모두 삼베나 무명으로 만든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고, 남자는 삼베로 된 건(巾)을 쓰고 여자는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전통 혼·장례학교를 만들어 보급에 앞장선다면 이보다 더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이런 전통문화를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혼례나 장례 업자들이 발전적으로 이끌어간다면 우리 고유의 전통 혼·장례 문화는 자자손손 이어지고 세계가 부러워하지 않을까? 해방 후 근대화라는 미명 하 국적도 족보도 없는 혼·장례식을 치러온 지난날을 우리 모두 뼈저리게 반성하고,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시켜 발전적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이것이 한국 결혼식이고, 이것이 한국 장례 문화라고 내세울 수 있는 그날을 애써 기다려본다. 최근 BTS 등의 우리 고유의 K-팝, 우리 영화, K-푸드 등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처럼, ’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것이 좋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