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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Jul 02. 2021

나의 직장(直腸) 시련기

Feat. 검지 손가락의 헌신

관장


1차 시도


간호사가 주사액을 밀어 넣었고, 나는 권장 시간인 5분간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신호가 왔지만 참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가스가 계속 나왔다.

기저귀를 차고 병상에 모로 누워있는 심정은 형언할 수 없이 비참했다.


하지만, 의외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속은 계속 불편했다. 결국 실패


2차시도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다시 한번 시도.


이번에는 좀 달랐다. 설사처럼 배가 살살 아파왔다. 곧 나올 듯한 느낌.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만 계속 아파올 뿐.


2번이나 실패하였기에, 담당 간호조무사님을 불러서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내 부탁에 조무사님은 엄청나게 당황했다. 하체가 완전히 마비된 나를 장애인 화장실로 끌고 가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던 것 같다.


내가 체격이 크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남자이다 보니 여자 조무사 분들이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리라.


조무사님은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냥 기저귀에 대변을 보시면 되요. 제가 치울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만일 환자분이 다치시기라도 하면 저뿐만이 아니고 전체 근무자가 징계를 받는다구요…’


‘누워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화장실에 가면 될 것 같은데... 제발 데려다주세요.’


혹여 낙상사고라도 나면, 엄청난 징계를 받는 모양이다.


조무사님은 애원했지만, 누워서는 도저히 안 되겠기에 나 역시 장애인 화장실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다.

아무래도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누운 채로 대변을 볼 수가 없었다. 정신이 온전하니 더 괴로웠다.


나의 계속되는 설득에 두 분이 함께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양 옆에서 팔을 잡아 휠체어로 옮기셨고, 다시 장애인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앉혔다.


얼마 만에 앉아보는 변기인가!

감회가 새로웠다. 빼앗긴 일상을 되찾은 기분!


정상인의 기분을 맛보는 것도 잠시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힘을 주어 보아도 아프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 동안 힘을 쓰던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손가락 관장


https://brunch.co.kr/@nisiho11/8


그당시 나는, 손가락 관장이란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살기 위해 애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만일 내가 이번에 실패한다면, 의사 양반에 의해 손가락 관장술이 행해졌으리라...

남이 해 주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나은것 같다.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


1회용 장갑을 끼고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조금씩 조금씩 살살...

이윽고 엄청나게 딱딱한 것에 검지에 닿았다. 딱딱하고 또 거대했다.


항문을 완전히 막고 있는 그 물체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그것은 밖으로 나오지 못할 만큼 너무 컸다. 열흘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온 나의 업보


밑은 여전히 괴로웠지만, 머릿속이 맑아져 왔다.


검지를 이용해서 살살 건드려 보았다.

조금씩 부서지는 것이 느껴졌다.

한참을 긁어낸 끝에 조그마한 부스러기를 빼냈다.


뛸 듯이 기뻤다.

이거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조금만 더 해보자.


몇 분에 걸쳐 조심스럽게 가장 큰 덩어리를 살살 긁어내고 나니, 그다음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양이었다.


변기가 막힐 것 같아 걱정이 될 정도였다.


거의 2주간 동안 내 아랫배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그것들을 해방시키고 나니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내 생애의 배변 활동 중 가장 상쾌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하였지만...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 아니 휠체어를 굴리는 손놀림은 상쾌하기만 했다.


아주대병원 정형외과에서는 2주간의 추적관찰 끝에 나를 재활의학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외과적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재활의학과는 간호간병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인원 관계상 재활치료할 때마다 담당 조무사님이 환자를 데리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재활치료를 위해 아버지가 다시 오셨다. 아버지의 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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