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 이야기 3 - 손가락 관장
비위가 약하신 분은 주의하세요
인턴들에게 가장 하기 싫은 술기를 고르라 하면 백이면 백 손가락 관장(finger enema)이라고 대답한다. 손가락 관장은 말 그대로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서 변을 꺼내 주는 술기이다. 나는 인턴 돌면서 초반, 중반, 그리고 인턴 마지막 주까지 총 세 번 해봤다.
손가락 관장은 변비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한 뒤에도 변을 보지 못하면 시행한다. 그래서 만약 이 술기가 생기면, 거부권은 없고 조용히 만반의 준비를 하러 가면 된다. 마스크 2장 쓰고, 장갑 2겹 끼고, 큰 부직포와 쓰레기봉투를 준비하여 환자에게 간다. 부직포를 침대 위에 깔고 환자가 벽을 보도록 옆으로 눕게 한 후 바지를 많이 내려 변이 묻을 가능성을 없앤다.
이후에는 간단하다. 항문에 손을 넣어 손가락이 닿는 데까지 변을 긁어내면 된다. 처음에는 굉장히 딱딱한데 살살 긁어서 잘 빼내면 이후로는 꽤 질퍽한 변들이 기다리고 있다. 닿는 데까지 열심히 빼내면, 안에 고여 있던 변들이 슬금슬금 내려오는 게 느껴진다. 내려오는 변들에게 열심히 세상의 밝은 빛을 보여주고 나면 두 가지 상황이 온다. 손에 걸리는 게 없거나 아니면 또 슬금슬금 내려오는 게 느껴지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쯤 했으면 그만 멈춰도 좋다. 나머지 변은 환자 스스로 충분히 배출할 수 있다. 얼른 가서 정리하고 손을 씻도록 하자.
손가락 관장은 마치고 나서도 그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간다. 우선, 열심히 파내는 동안 변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콧구멍을 통해 뇌까지 파고 들어서 그 여파에 몇 시간 동안 정신이 아찔하다. 냄새는 두 겹의 장갑 역시 뚫고 손가락에 며칠을 머무른다. 밥 먹을 때, 세수할 때 등 얼굴에 손이 가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고통스럽다. 인턴 마지막 주의 나는 복통이 심한 할아버지의 항문 검사를 하러 갔다가 엄청난 양의 변을 발견하고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마스크 1겹, 장갑 1겹으로 변 1킬로를 빼냈다. 다음날 완치되어버린 환자와 담당 교수님의 극찬을 받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