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고 봄을 만나러

느린 이동이 보여주는 것들

by 에치피


속도를 낮추면 보이는 것

KTX가 도입된 이후, 기차는 빠른 이동 수단이 되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 반. 하지만 속도를 올리면서 잃어버린 것도 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이 줄었다. 풍경이 선이 되어 지나가 버린다.


코레일 기차여행 할인 정보를 정리한 글을 보면서, 올봄에는 무궁화호를 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느린 기차는 풍경을 점이 아니라 면으로 보여준다. 그 차이가 여행의 밀도를 바꾼다.



제주라는 예외

기차가 닿지 않는 곳도 있다. 제주도 봄 여행 코스를 정리한 글을 읽으면서,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주는 특별함을 생각했다.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일상과의 단절을 물리적으로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유채꽃과 벚꽃이 동시에 피는 제주의 봄은, 본토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같은 한국인데도 다른 계절을 사는 느낌이 든다.



이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여수 야경 여행 코스를 검색하다가,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로 3시간이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행기면 1시간. 하지만 3시간짜리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는 더 좋다. 음악을 듣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잠이 들거나.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니다. 이동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다. 교통카드 하나 챙겨서 무작정 역으로 향하는 봄이 올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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