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의 벚꽃 명소, 그리고 문화의 차이

같은 꽃이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by 에치피

벚꽃은 일본에서 시작된 이야기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봄의 상징이 됐다. 미국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 독일 본의 헤르슈트라세, 캐나다 빅토리아의 공원들. 나라마다 벚꽃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그 차이가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일본 — 하나미의 나라

일본에서 벚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하나미(花見)라는 문화가 있다. 꽃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으며 꽃을 즐기는 문화인데,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회사 동료끼리 모인다. 꽃 구경이 사교 행사인 셈이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이나 신주쿠 교엔은 하나미 시즌에 자리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맡아놓고 저녁에 본대가 합류하는 식이다. 예약 자리를 봐주는 아르바이트까지 있을 정도니, 문화의 깊이가 남다르다. 벚꽃 아래 앉아 오다큐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그 장면이, 일본 봄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교토는 또 다른 분위기다. 마루야마 공원의 수양벚나무 아래는 밤에도 조명을 받아 사람들이 모인다. 기온 거리를 걷다 고개를 들면 골목 위로 벚꽃이 드리워져 있고, 그 아래로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지나치게 그림엽서 같아서 오히려 실재하는 느낌이 든다.



미국 — 외교가 만든 벚꽃 명소

워싱턴 D.C.의 벚꽃은 역사가 있다. 1912년 일본이 양국 우호의 의미로 벚나무 3,000그루를 기증한 것이 시작이다.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포토맥 강변의 벚꽃 축제는 매년 수백만 명이 찾는 행사가 됐다.


미국에서 벚꽃을 즐기는 방식은 일본과 다르다. 돗자리를 깔고 앉기보다는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조깅하는 사람들 사이로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 어딘가 더 역동적이고, 더 분산된 느낌이다. 국내외 벚꽃 여행지와 명소를 정리한 글에서도 이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을 만날 수 있다.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 캠퍼스는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다. 캠퍼스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 길 양쪽으로 벚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만개하면 연분홍 터널이 생긴다. 학생들이 공부하러 가는 길에 그 터널을 지나는 거다. 부럽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독일 — 벚꽃 가로수길

독일 본의 헤르슈트라세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 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약 2km에 걸쳐 벚나무가 늘어선 주택가 골목인데, 만개하면 분홍빛 터널이 된다. 독일 특유의 정갈한 주택들과 벚꽃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유럽에서 벚꽃은 이국적인 꽃이다. 아시아에서 건너온 나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느껴진다. 거리 배경이 낯설기 때문에 오히려 벚꽃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같은 꽃인데 배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꽃처럼 보인다.



같은 꽃, 다른 의미

나라마다 벚꽃이 품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 일본에서는 덧없음과 아름다움, 한국에서는 봄과 낭만, 미국에서는 외교와 우호, 유럽에서는 이국적인 아름다움. 같은 꽃이 이렇게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갖게 됐다는 게 흥미롭다.


한국의 벚꽃 여행을 생각해보면, 진해나 경주, 여의도처럼 특정 장소가 곧바로 떠오른다. 3월에 국내에서 벚꽃이 가장 먼저 피는 여행지를 모은 글을 보면 알겠지만, 제주도와 남해안이 먼저 피고 북쪽으로 올라온다. 벚꽃 전선이 북상한다는 표현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언젠가 나라마다 벚꽃을 쫓아가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제주에서 시작해서, 서울,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워싱턴으로. 꽃의 계절을 따라 지구를 도는 거다. 상상만으로도 봄이 두 달쯤 되는 느낌이다.



여행이 끝나도 남는 장면들

세계 각지에서 본 벚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의외로 이름 없는 장소인 경우가 많다.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상 속 골목이나 공원 어귀에서 우연히 마주친 벚나무. 그런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벚꽃은 어디서 봐도 결국 같은 꽃이다. 그런데 그 꽃 앞에 선 내가 있는 나라가 어디냐에 따라,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그게 여행이고, 그게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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