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주는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12월 중순에 학기가 끝나고
약 한 달간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교수와 학생 그 어딘가에 있는 남편은
본인 페이퍼를 써냄과 동시에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매기느라 학기말엔 늘 바쁘다.
남편이 학생들을 가르친 기간도 이제 꽤나 연차가 쌓였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할 일은 점차 불어나서
요령이 생기긴 했다고 해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줄어들진 않아 보인다.
미국의 수많은 전공들의 박사과정 프로그램들이 있고,
모든 프로그램들은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것이다.
대개 Ph.D. 는 5년 정도 걸린다고는 하지만,
남편이 속해있는 프로그램에서
대대로 한국인 학생들은 평균 7-8년 차에 졸업을 했다.
남편의 한 학년 선배인 7년 차 한국인 박사님도
드디어 좋은 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내년 5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 쌓인 선배들의 발자취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추측하자면,
남편도 내년까지, 혹은 내후년까지 이곳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남편은 그 시기를 앞당겨 보려고 노력 중이기는 하지만,
예상 기간을 타이트하게 잡는 것보다 좀 더 여유롭게 잡는 편이 나의 정신건강에는 이롭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 보는 것으로 마음을 잡아두고 있다.
영주권 받는 날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시민권 받을 고민을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다.
이렇게 또 나이가 한 살 먹는구나 싶어 덜컥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근래에 어디서 들었는데 공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초라함을 동반한다고 한다.
사회가 주는 초라함,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초라함이 있을 텐데
적어도 최고가 아니면 (심지어 최고가 되어도) 후려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는 않으니,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만 아껴주고 신경 쓰면 돼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씩씩하게 마음먹고
머리 싸매고 끙끙대는 우리 두 사람
올 한 해도 수고 많았고, 내년에도 꼭 좋은 날 있을 거라고.
큰 동요 없이 지금처럼 뚜벅뚜벅 걸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