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When the Lord closes a door, he opens a window.”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마리아의 대사이다.
지난번 글을 작성할 때만 해도
나는 남편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어떻게든" 해결은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해결이란 그저 시간이 앞으로만 가기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날 일은 끝난다는 생각으로써의 해결이었다.
큰 희망보다는 그저 큰 고비 없이
학회가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졌었는데,
우리를, 특히 남편을 심하게 괴롭힌 그 학회가
끝나고 나니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었다.
며칠 내내 이어진 학회에서
마지막 날 발표를 하게 된 남편은
본인의 발표날이 될 때까지 밤잠을 줄이며
계속 발표 자료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시간이 모자라는 건 당연했기에
중요한 일정만 참석하고는 다시금 호텔방으로 돌아와
대충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잠은 쪽잠을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그는 학회 마지막 날까지 고군분투를 했다.
모처럼만의 네트워킹 기회는 날아갔지만,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일단 자기 발표를 성공적으로 하는 게
학회에 참석한 한 발표자로서 할 일이기에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집에서 안타까워하기만 했다.
이번 학회에 나는 따라가지 않았었는데,
만약 자질구레한 잡일이라도 따라가 도왔었다면
남편이 버려가는 시간 없이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자신의 발표 날에 맞춰 준비가 잘 끝났고,
그동안의 허둥지둥한 모습은 싹 숨겨 둔 채로
전문가다운 면모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무사히 발표를 마친 남편을 보니
그제야 나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나온 남편은
거기서 한 템포 쉬지 않고 나아간 김에 더 나아가려고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이제는 졸업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졸업논문으로 준비하던 것보다
학회용으로 준비하던 논문이 더 괜찮게 나와서
어쩌면 그걸로 졸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옵션이 남편에게 생겼다.
뭐가 되었건 둘 중 하나의 논문으로
남편의 졸업이 결정될 것 같은데,
만약에 학회용 논문이 기존 준비하던 것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면
아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졸업이 조금은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소식은 바닥에 붙어있던 내 인내심에게
큰 희망이 되어 다가왔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기다림보다
언제가 끝인지 그래도 작은 힌트가 있는 기다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서 큰 차이가 생긴다.
너무나도 아득히 멀어서
그런 순간이 언젠가 정말 올까? 싶었던 그런 순간이
이제 점점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그 "어느 날"을 기다리는 게
이제는 정말 조금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