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매달린 두 사람의 요즘 일상
글자 그대로 우리는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 같다.
주어는 바로 나와 남편.
가끔씩 이런 고비가 스쳐 지나간 지 몇 해가 지났다.
계절이 바뀌듯 또 한 번 정신의 고비가 온 것이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 한데,
이 고비라는 것은 인생에 찾아올 때마다
강도가 조금씩 조금씩 거세져서 더욱 힘들다.
우리가 절벽에 매달리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남편의 학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부터이다.
당장 며칠 안 남은 학회의 준비 자료가
어느 지점에서 막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중이다.
데이터에 문제가 생겨서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혀버린 남편은
하루에도 수십 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연구에 직접적 도움이 될 수 없으니
내 할 일을 하면서
요령껏 남은 집안일을 모두 떠맡는다.
원래도 공수 교환이 잘 되는 우리 부부는
한 명이 일 때문에 정신의 방에 갇히면
묵묵히 그 옆을 지키며 서포터를 자처한다.
남편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절벽에 매달린 건가?
한참 들여다보던 구멍 난 가계부는
어떻게든 긁어모은 소량의 돈으로 대충 메꿨다.
여기서 조금 정신건강에 스크래치가 났나?
파면 팔수록 더욱더 어려워져서
내가 감당 가능한 일이 맞는지 수백 번 의심이 드는,
하루하루 점점 더 스스로 궁지로 내몰고 있는
이 시험공부가 나를 절벽으로 내몰았나?
누굴 만나 하소연하려다가도
이역만리 떨어진 이 나라에 맘 터놓을 친구도 없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친구는 한 줌 있는데
주머니가 여의치 않으니
밥 먹기도 부담스럽고 놀기는 더 부담스러워
연락하기도 부담돼서 말았다.
갑자기 오늘 잊고 지내던 어떤 단어를 만났다.
"헝그리 정신"
외로움과 빈곤에 맞서 싸운다.
이거 딱 지금 상황에 쓸 수 있는 말 아니야?
박사과정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검색하다가
이런 찰떡같은 단어를 만났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가신 수많은 박사들과 그의 가족들이
지금 나에게는 큰 버팀목이자 위안이다.
돌이켜보면 어떤 일이건 간에
영광은 찰나이고 나머진 다 이렇게 그 영광을 준비하는
길고 지루한 과정의 연속일 뿐이다.
박사과정은 거기에 가난이 추가되었을 뿐.
이 과정에서 나는 요즘
혼자 하는 싸움에서의 외로움의 절벽을 만난 듯하다.
그래도 "번쩍" 하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기다리고 버티고 거절당하는 날을 다 지나서
언젠가 꼭 다시 그 영광의 찰나를 맛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