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의 재미 Oct 09. 2017

 7년의 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삶을 통틀어 이런 명절이 있었을까.


모처럼 찾아온 열일간의 달콤한 휴식기간.

욜로족이 되어보자고 되새기며 저지른 첫번째 짓은 잠 그리고 또 잠.

지칠때까지 죽어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겨우 하루가 지나있더라.

정신없이 서점으로 향했다. 비도 주룩주룩 오겠다. 없는 감성 살려가며.

눈에 띄는 책들을 마음껏 골라서 죽치고 읽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런 시간들..


대학시절 도서관 구석탱이에서 쪼그려 앉아 읽던 그 시절이 그리운건 ,, 시들어가는 내 청춘...


7년의 밤, 정유정 장편소설..


겹겹이 쌓아올려진 수많은 책들 중에 눈에 들어온 몇권 중 한권 이었다.

물론, 소설 빠돌이로써 소설만 찝어서 고자리에서 고대로 읽어나기기 시작했다.


작가 정유정, 종의 기원으로 내게 각인된 작가.

간호사라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 작가.


7년의 밤은 텍스트가 주는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여성의 섬세함이 아니라 남성의 섬세함이 강하게 느껴진건 왜였을까.


"헐렁한 니트와 낡은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그 안에 근사한 몸이 들어 잇다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혀를 밀어 넣어 그녀의 치아를 맛보고 싶었다. 물론 맛보기 전에 그녀가 누군지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하영은 버릴 여자가 아니라 교정할 여자였다."


"일단 그의 세계 안에 들여놓은 다음에 한눈파는 버릇부터 교정할 계획이었다."


먼 놈의 문체가 이리도 야시란지.


낮간지러워서 눈을 더 크게 뜨고 죽죽 읽어내려가는 ... 인간의 상상력이란.. !!


가끔 이런날이 필요했다. 아니, 사실 자주 이런날이 필요했다.

도무지 끊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집까지 들고와 새벽 네시경에야 마지막 장을 덮으니,, 눈이 침침했다.


모처럼 재밌는 스릴러 소설을 아무 생각없이 읽어내려갔고,

이후에 밀려드는 인간 이성에 대한 편파적인 잡다한 생각들.


곧 스크린에서 7년의 밤이 영화로 상영된다고 한다.

텍스트의 매력을 살릴 수 있을까.

둥둥 떠다니며 배회하는 자아들을 이미지가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칼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