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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2. 2023

나는 무는 개 입니다.

2. 역전이었다.



오래전 일이었을 뿐이다. 다시 뒷다리에 힘을 주어 달려 나갔다. 머리를 대문 틈 사이로 밀어 넣은 채 앞다리를 힘차게 내밀었다. 문 끝이 어깨에 닿았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첫걸음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저 밖으로, 더 먼 곳으로 달려가기로 했다.


앞을 보고 달리는데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밤하늘이 보였다. 앞발은 더 이상 땅에 붙어 있지 않았고, 꼬리는 바닥에 닿았다. 목줄이 나를 잡아당긴 것이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람은 없었다. 대신 굳게 잠긴 대문이 보였다. 목줄 끝의 말뚝이 대무 틈에 끼어 버린 것이다. 쇠사슬에 쇠말뚝이니, 아무리 용을 써도 저 대문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대문에 부딪히는 쇠말뚝은 어느새 사이렌 소리처럼 퍼져나갔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다. 무슨 수를 써야만 한다. 이대로 다시 잡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작년까지 흑염소가 갇혀 있던 철장이 떠올랐다. 아마 그곳일 거다.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 말이다.





어느새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목줄을 붙잡았다. 대문이 열렸지만 그들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거칠게 다루는 목줄에 그들의 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앞발로 땅을 붙잡고, 뒷다리로 바닥을 밀쳐 내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순간 억울하다는 생각이 나더라.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만 하나? 옆집 꼬마가 건네준 닭다리를 냅다 물었던 것이 문제였다. 전날 그릇에 담긴 사료는 단맛이 빠진 채 말라 있었다. 하루를 굶었다. 그렇게 마주한 향기로운 고깃 덩어리는 이성을 잃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사람을 문 것은 절대 아니었다. 꼬마의 손이 작고 여렸을 뿐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줄질을 해대는 사람을 마주 보았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되돌릴 수 없었다. 꼬마보다 크고 거친 손을 향해 날아올랐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라고 했다. 위아래 송곳니에 힘을 모아 죽도록 세게 물었다. 






소리를 지르며 사람이 쓰러졌다. 물린 손은 목줄을 떨어뜨렸고, 나는 그대로 달렸다. 큰 일을 저질렀기에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목줄은 더 이상 나를 붙잡지 못했다. 그러나 멈출 수밖에 없었다. 대문은 닫혀 있었다. 다시 잡혀 올 때 굳게 닫혀 버린 것이다. 힘으로 뚫어 낼 수 없음을 직감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불을 듣 사람, 의자를 끌고 온 사람도 있었다. 사냥을 위해 도구를 챙겨든 사냥꾼처럼 서서히 좁혀오고 있었다.


이윽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때로 몰려드는 그들을 향해 이빨을 보이며 저항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의자 다리를 내밀고 달려드는 그들은 짐승이었다. 의자 다리 사이에 끼인 채로 발버둥을 쳤다. 잠시 후 나는 담벼락 위에 서 있었다. 아마 있는 힘껏 도망치기 위해 무언가를 밟고 날아올랐었나 보다.





역전이었다. 그들은 올려보고, 나는 그들을 내려 깔아보았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권은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제발 그만 담벼락에서 내려와 달라고 말이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 삶은 항상 일방적이었다. 주는 대로 먹고, 주어진 대로 견뎠다. 줄에 묶인 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그들처럼 말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뛰어오르기에 높은 담이었지만 뛰어내리기는 쉬워 보였다. 사람을 보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몸짓을 해야만 했다. 가식적인 몸부림에 지쳐버렸다. 지금부터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담벼락에서 뛰어내려 세상 밖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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