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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Oct 26. 2023

나는 무는 개 입니다.

1. 사람을 물었다.


“저 개자식 죽여버려.”


사람을 물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가 그랬다. 아무도 이유를 물어봐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고집한다. 그것만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긴다. 내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배워야겠지만 불가능이다. 덕분에 지금 궁지에 몰렸다. 분노한 사람들이 사냥감을 쫓듯 좁혀 왔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 중에 웃음을 띠는 사람도 보였다.


무서웠다. 사냥감을 포획하기 전 입맛을 다시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손은 거칠었다. 갈고리로 나를 포박했다. 갈고리는 한겨울 양푼 밥그릇처럼 차가웠다. 짓누르는 갈고리에 함부로 날뛸 수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목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너무 움츠리다 못해 구겨진 옆구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낡은 목줄로 말뚝에 매였다. 마당 한가운데에 나를 던져 놓았다. 그들의 노려보는 눈빛과 원망을 고스란히 감당하는 형벌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비가 세차게 내렸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던 이는 안쓰러움보다 통쾌하다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 세상에 법이 없다면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개가 아닌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보호를 받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은 몰랐다. 반대로 개라는 이유만으로 매 순간 무시당하기 일쑤인 견생이었다. 왜 나에게 사람처럼 말을 하지 못하냐고 따져 묻는 그들이 밉다.


밤새 퍼붓는 비에 몸은 더 웅크려졌다. 한 걸음 더 내딛지 못할 정도의 짧은 줄에 묶였다. 배가 아팠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질 정도로 최대한 멀리 뒷걸음쳤다. 그리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배변을 보았다. 배설물을 치우지도 못할 만큼 짧은 줄에 묶여버린 신세를 그들은 모를 거다. 개들도 자기 똥은 자기가 치우고 싶어 한다. 줄에 묶여 사는 동네 개들만 보아도 안다.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더 멀리 배설하려고 애쓴다.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개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다. 아니다. 저런 모진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더 후회스러웠을 것이다.




비가 쉽사리 그치지 않았다.


멀리 마당 끝에 보이는 개집의 지붕이 요란했다. 내가 오늘 아침까지 먹고살던 곳이었다. 찌그러진 양푼 냄비는 비바람에 엎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종일 저 개집에 묶여서 하는 일이라고는 찌그러진 냄비에 밥이 채워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물은 이틀에 한 번씩 채워졌고, 때로는 나흘까지 바닥만 핥아야 했다.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이런 나의 생사 여부만 확인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빈 물그릇을 긁어 그들의 단잠을 방해하면 그때서야 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무더위에 죽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폭염에 고무 개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그럼에도 불판 같은 바닥보단 나았다. 고개만 내밀고 누워 숨 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해가 넘어감에 따라 개집의 그림자도 자리를 옮겼다. 참을 수 없이 더운 날이면 그림자를 쫓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냉철한 사람들이 퍼주었던 차가운 물은 이미 따뜻한 물이 되어 있었다. 말라버린 입을 그 따뜻한 물로 헹궜다. 그렇게 한 달의 폭염을 버텼다. 기어코 살아남았다. 차라리 쓰러지거나 기절했으면, 아니 죽어버렸으면 어땠을까? 이런 무더위는 개에게도 버거운 날이라고, 그렇게 온몸으로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한겨울 눈밭에서 몸을 털고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기 때문일 거다. 밤새 웅크리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 뼈마디가 소란스러웠다. 들숨만으로도 찬바람이 콧구멍으로 밀려 들어왔기에 꼬리로 주둥이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그릇에 담긴 물은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결국 팽창하다 못해 싸구려 양푼냄비가 찢어졌다. 겨울 내내 찢어진 틈으로 물이 새는 그릇 바닥을 핥았다. 한 번도 옆으로 널브러져 잠들지 못한 겨울이었다. 혹독한 추위를 털고 일어나도 문제였다. 짧은 줄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콩벌레 마냥 웅크려 버텼다. 그 겨울에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다.




빗물이 말뚝에 고이기 시작했다.


목을 휘저어 당겨보니 말뚝이 흔들렸다. 이대로 밤을 보내버리면 훗날은 뻔했다. 이맘때쯤 동네 개들은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제는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 한 번 더 목을 휘둘렀다. 더 이상 목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말뚝이 완전히 뽑힌 것이다.


냅다 달렸다. 낮은 담벼락이지만 뛰어 넘기는 쉽지 않았다. 방향을 틀어 살짝 열린 대문으로 달렸다. 멈추거나 주춤거릴 이유는 없었다. 말뚝이 박혀 있던 곳에 지난날들을 내던지고 달렸다. 원망도 미련도 한 톨 남가지 않았다. 목줄 끝에 매달린 말뚝은 내가 뛸 때마다 춤을 추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길래 이토록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외로움에 날뛰며 짖어댔던 시간들이 지금 이 순간 잠깐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창 밖의 개소리를 무시하던 사람들은 지금의 말뚝 소리도 무시하는 중이다.


대문이 한 걸음 앞이다. 문 틈이 좁아 보였지만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대문 밖을 마지막으로 나갔을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어릴 때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문 틈으로 들락날락했었다.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였고 갈 길을 잃어 방황하는 내 모습에 누구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는 마당 뒤편에도 자주 갔었다. 작은 나에게는 미로와도 같던 그 길을 탐험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묵직한 손이 내 목을 쥐어 잡았다. 이상했다. 주인은 저 멀리 있는데 여전히 움켜쥔 손길이 느껴졌다. 그냥 착각이라 여기며 다시 마당 뒤편으로 가려고 힘차게 내디뎠다. 그 순간 누군가 나를 반대편으로 세차게 당겼다. 놀라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새로 생긴 말뚝과 나 사이에 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 후 깨달았다. 다시는 뒷마당 모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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