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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1. 2023

백마리 개, 하루의 시작

5. 아침이라고 반겨주는 개 한 마리 없다.

백 마리 개들이 사람을 보고 시끄럽게 짖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틀렸다.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환영식은 5분을 넘지 않는다. 돌아갈 때 배웅 나오는 개도 없는 편이다. 1년 365일을 함께 먹고 자는 나의 하루를 반겨주는 개도 거의 없다. 곁으로 지나가도 굳이 비키지 않고, 나 또한 굳이 개를 넘어 다니지 않는다. 배설하고 있으면 자리를 피해 주고, 밥 먹는 때에는 기다린다. 청소도 식사도 뭐 하나 급할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은 꽤나 고요하다.




계절을 탄다.


겨울이면 오전에 들이치는 햇살이 만든 조그마한 양지에 개들이 모여든다. 어제까지 치고 박던 개들이지만 햇살이 주는 약간의 온기를 나누는데 주저함이 없다. 개들은 사람처럼 치사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지면 햇살이 만드는 양지도 넓어졌다가 줄어들며 자리를 옮긴다. 옹기종기 모여 있던 개들도 이를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겨울이 추울수록 개들이 분주해지는 이유이다.


봄과 가을은 지나치게 짧다. 어릴 적 기억과 차이가 난다. 최근 몇 년의 간절기도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 항상 봄은 여름을 준비하는 시간이었고, 가을은 겨울을 앞두고 바쁜 시간이었다. 좋은 날씨 덕분에 일하기 싫어질 만큼 나태해지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에 가까워질수록 나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노동하기 편한 계절에 준비한 만큼, 딱 그만큼 더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위와 추위 중 개에게 뭐가 더 힘드나요?


주저 없이 더위가 쥐약이다. 가정견을 키우는 여러분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후원금으로 개의 살림을 꾸리는 이곳이다. 아무리 많은 후원금이 있어도 여름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실내라고 부르기에는 밖으로 이어지는 문들이 다 큼지막하다. 에어컨을 틀어도 선풍기처럼 주변만 시원해질 뿐이었다. 여러 아이디어가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얼음을 주는 것부터 차가운 대리석을 깔아주는 것까지 말이다. 내 마음은 편해질지 몰라도 솔직히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루 10번 차가운 물을 갈아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웬만해서는 건들지 않는다.


먹고 자는 2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는 항상 대여섯 마리가 누워있다. 계단 층수가 12개이니 지분 절반을 개들이 차지한 셈이다. 반갑게 일어나 나를 반기는 녀석들은 하나 없다. 여전히 눈을 감은채 잠을 자거나, 고개만 들어 눈을 마주치는 정도이다. 자리를 비켜줄 생각이 없는 녀석들을 건너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진 적도 있다. 발로 툭툭 건들어 비켜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하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게 잘 넘어가면 그만이다.


계단 아래에 다다르면 앞마당에 자리 잡은 몇몇 개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굳이 나와 친해질 필요가 없는 곳이기에 그런 눈빛을 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나를 노려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주시하는 것이다. 여기 모든 개들이 사람을 반겨줄 리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부분인데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길을 떠돌다가 구조되었으나 달리 나아지지 않았던 개들이 이리로 모여들었다. 나를 적대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경험한 사람이라는 동물에 대한 경계심일 것이다.


굳이 먼 길을 통해 작은 개들이 있는 실내로 들어온다. 나로 인해 누군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 대상이 개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덩치가 작아질수록 눈앞의 사람은 더욱 거대하게 보일 것이다. 대들거나 반항하는 것보다 친해지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을 이 작은 개들은 눈치채고 있다. 가볍게 내민 손에 거칠게 달려들어 서로 차지하려는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덩달아 아랫마당과 뒷마당의 개들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마당을 달리는 발자국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2회 차, 다시 시작


하루에 하루가 여러 번 등장한다. 오전 청소를 마치고 잠시 쉬어간다. 길어봤자 1~2시간이다. 그 사이에 아침에 일어났던 장면들이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대여섯 마리 개들은 다시 계단에 자리 잡고, 나를 노려보던 개들도 본래의 자리에서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실내의 작은 개들은 햇살에 모여들어 밤잠을 자듯 단잠에 빠지고, 눈 뜨자마자 치고받고 다투던 개들도 휴전을 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비닐봉지를 들고 2회 차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를 핑계로 개들 사이를 오고 가는 일에 더 가깝다. 별 이유 없이 개들 사이에서 놀아주기에는 솔직히 피곤하다. 개똥을 줍든 물을 갈아주는 무슨 일이 생겨야만 개들 곁으로 간다. 그래서 한 번에 할 일들을 후딱 처리하지 않는다. 은근슬쩍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다. 아무리 귀찮고 피곤해도 꼭 해야만 하는 일들 말이다. 내가 내 몸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한 번 더 움직여 달라고.


이쯤에서 궁금할 거다. 3회 차, 4회 차에도 똑같은지 말이다. 똑같다. 다만 내 몸이 피곤해지기에 조금 느려진다. 보다 천천히 움직인다. 느려진 나에게 흥미를 잃은 개들은 멀찌감치 앉아 관객처럼 자리를 잡는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개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루 종일 발로 눈으로 마음으로 나를 좇았으니 개들도 지쳐갈 시간이 된 것이다. 내일이 되면 다시 1회 차부터 시작이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한다.




어제 쓰다만 원고에 살을 붙여 이리 또 글 하나를 적었다. 집중하지 못한 티가 난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고, 필요한 이야기만 골라내지 못했다. 뭐, 가끔 그런 날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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