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준성 Oct 29. 2023

백마리 개, 그중 딱 세 마리

4. 만수, 덕승이, 마음이

직업 군인을 그만두고 펫시터를 했었다. 1년 정도 지나니 개들이 열댓 마리가 남겨졌다. 맡긴 후에 찾아가지 않고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들이 유기한 개들이었다. 보호자를 찾아가 따져 묻는다고 나아질 것도 없었다. 그냥 데리고 있기로 했다. 이것이 지금 내 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중 딱 세 마리를 꼽아 보았다.




몸이 좋아졌을 때의 모습이다.


버려지지 않아 버려졌던 만수


연락을 받고 늦은 밤이었지만 바로 차를 몰았다. 새벽쯤에 도착했고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더라. 문자를 남겼다. 연락을 주지 않으면 창문 부수고 들어가겠다고. 5분도 되지 않아 연락이 왔고, 다시 5분 후에 만날 수 있었다. 보호자가 자신의 개를 돌보아 달라며 부탁했던 펫시터였다. 공짜가 아닌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맡겨졌다고 하기에는 개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간단한 인사 한 마디 없이 개를 인도받은 후 뒤돌아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한 대 쥐어박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듬성듬성 삐져나온 털은 끈적한 피부와 엉켜 난리였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다리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시간을 들여 깨끗하게 씻긴 후 밥을 주니 잘 먹었다. 보호자가 만수를 누군가에게 맡기기 시작한 것은 대략 7년 전쯤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되어 맡겼던 것이다. 아마 그 보호자를 욕할 생각이라면 접어두길 바란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과연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결혼과 임신, 출산과 불치병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이름은 만수이다. 여러 사람을 거치며 여러 욕심들을 채우는 용도로 이용되었으니 몸이 성할리는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피부와 털이 좋아졌고, 걸음걸이도 양호해졌다. 동물병원에서 그랬다. 관절에 연골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다리 근육의 힘으로 어찌어찌 걷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동안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 아니었을까? 논두렁을 걷다 멈춰 서서 민들레 꽃향기를 맡던 만수를 기억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에서 덕승이를 처음 만났다.


만져 달라는데 만지면 물어요.


방문한 사람들에게 덕승이를 소개하는 말이다. 꼬리를 흔들고 애교를 피우며 다가오지만 머리라도 쓰다듬으려고 하면 물 것처럼 입을 벌린다. 실제로 물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나운 개, 혹은 입질하는 개로 낙인찍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화를 한 두 번 내었다고 그 사람을 분노조절 장애로 말하지는 않는다. 소개말을 바꾼 후로 덕승이에게 상처가 될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비 내리는 새벽이었다고 한다. 건너편 옥상에서 구슬피 울어대는 개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았다고 한다. 내리는 비를 피할 곳 하나 없는 곳에서 다리를 절뚝이는 어린 황구 한 마리가 거기에 있었다. 주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에게 소유권을 양도받은 보호자가 나를 찾아오는데 한 달이 걸렸다. 그 사이에 동물병원에서 으스러진 다리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았다.


다리에 핀이 세 개나 꽂혀 있었다. 하루에 두 번 붕대를 풀고 소독을 한 다음 다시 붕대를 감아주어야 했다. 본 적이 없으니 친할리도 없었다. 팔뚝에 수건을 감쌌다. 덕분에 붕대를 갈아주는 일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한 달을 서로 눈치 싸움하며 붕대를 갈아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지금은 사료 그릇 하나에 다른 개와 혈투를 벌이며 지내고 있다.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매일 이렇게 자세를 잡아줘야 잠들 수 있었다.


내일은 녀석의 휴일이기를.


전날 꿈을 꾸었다. 철창 안에 백구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 스테인리스 받침 위에는 주사기 3대가 보였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렇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날 오후 기다리던 녀석이 도착했고, 이름은 마음이라고 지었다. 꼬리를 흔들고 눈동자를 굴리는 것만 가능했다. 사지는 마비되어 일어서거나 걷는 것은 불가능이었고, 틱 장애까지 있어서 고개를 가누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먹고 싸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마음이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고, 틱으로 흔들리는 고개를 받쳐야만 뭐든 먹을 수 있었다. 사료를 씹다가 혀를 깨물어 피를 보기도 일쑤였다. 물을 먹이는 것은 열 배는 더 어려웠다. 10번을 시도하면 한 두 번 물을 먹일 수 있었으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변을 보는 것은 순전히 운에 맡겼다. 몸을 세워 구름을 걷듯 다리 운동을 시킨 후에야 그나마 변을 보았다. 이렇게 5년을 돌보았다.


이별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나도 개도 지쳐갔다. 내가 돌보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개가 살아가는 게 점점 힘들어져갔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의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개를 들고 병원으로 뛰었다. 그랬다. 안락사를 했다. 하루가 일 년 같았던 마음이의 내일이 휴일이었으면 했다.




삼십 분째 앉아 있는 중이다. 따로 할 말이 더 없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마리 개, 그런데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