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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Oct 28. 2023

백마리 개, 그런데 고양이

3. 지금껏 만지지 못하는 중이다.

여태껏 고양이를 10번도 만져보지 않았다. 평생 동안 말이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거나 혹은 그냥 싫어서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잘못 만졌다가 멀어질 바에는 그냥 지켜보는 편이 나았다. 참고로 말하면 나는 INFP 이다.




첫 번째 고양이 들레


부모님이 식당을 하신다. 식당 뒤편으로 몰려드는 길냥이에게 한 끼 두 끼 챙겨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신다. 길냥이를 위해 만든 난방하우스를 보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 마리 개만으로도 벅찬 하루였기에 끼니 걱정 없는 길냥이는 외면할 수 있었다. 살면서 고양이를 키운 적도,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무리에서 떨어진 채 상처 입고 숨어 지내는 고양이가 걱정된다면 연락이 왔다. 아무 대책도 없이 부모님 가게로 향했다. 남이 데려다주는 개도 돌보는 판국에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만져 본 적도 없는 고양이를 잡으라니... 인터넷을 뒤져 방법을 찾아보니 고양이덫을 이용하는 방법이 나왔다. 우측 상단 X표를 눌러 꺼버렸다. 덫을 이용하는 방법이 세상에서 지워졌다고 가정하기로 했다. 보다 어려운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종이 상자 뚜껑에 작은 숨구멍을 뚫어 놓으셨다. 이미 녀석을 잡아 상자에 넣어 두셨던 것이다. 부모님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잡았지만 놓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급하게 상자를 하나 주워오신 듯했다. 집에 오는 동안 상자는 제 역할을 다했다. 무사히 도착해서 1년을 보내고 지금은 내 노트북 뒤에서 잠자는 중이다.




두 번째 고양이 깜콩


백 마리 개 중에 그냥 고양이 한 마리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두 마리는 상상도 못 했다. 첫 번째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연을 이야기하기에는 앞서 말한 첫 번째 고양이를 데려왔던 상황과 똑같기에 생략하겠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이 녀석은 까만색 고양이다. 첫째 들레는 노란 고양이였다.


3일 동안은 깜콩이를 찾는 것이 일이었다. 까만색 고양이가 구석에 숨어버리니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건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베란다 문도 열려 있고 울타리 안에 가둬둔 것도 아니기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도망칠 수 있었다. 둘째 날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길래 그리 떠난 줄 알았다. 에어컨 실외기 뒤에서 고개를 내민 녀석이 그렇게 반가울지 누가 알았겠는가.


고양이는 야행성이라고 책에서 봤다. 지금은 직접 체험하는 중이다. 밤새도록 뛰어다닌다. 책에는 분명 밤새도록 옷장과 찬장을 넘나들며 공을 쫓아 굴러 다닌다는 말은 없었다. 부엉이처럼 가만히 앉아 눈만 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오늘도 새벽 4시쯤 깜콩이가 낚싯대를 흔드는 소리에 깰 듯싶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었다.


키우는 개가 외롭지 않게 한 마리를 더 키우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때만큼은 목소리를 높여 극구 반대를 외쳤다. 외로운 두 마리를 감당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개와 개가 모여 개들이 될지, 아니면 이 개와 저 개가 될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두 마리 생겨버렸다.


우선 배변통이 급했다. 하나의 배변통에 두 마리가 모두 배변을 볼지가 궁금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각기 다른 답이 되돌아왔다. 배변통 한 개로 충분하다는 말부터 4개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해진 것은 딱히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가까운 애견용품점에서 배변통과 모래를 하나씩 사 왔다.


착각이었다. 아니, 오만이었다. 1살 깜콩이가 2살 들레를 따라 배변통에 배변을 하고, 캣타워 위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양이인 들레가 눕는 곳을 쫓아다니며 엉덩이를 붙이고 누웠고, 들레가 물을 마시면 뒤따라 홀짝였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방법을 찾는 동안, 깜콩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깜콩이가 여기 온 지 열흘째다. 아마 당분간 만질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녀석이 먼저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리 속 좁은 사람이 백 마리 개들을 돌보고 있다. 거기에 고양이 두 마리 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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