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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Oct 25. 2023

백마리 개, 그들의 첫 끼

2. 배부른 개에 대해 우리는 몰랐다.

여기에 100마리 개들이 산다. 말티즈나 푸들 같은 중소형견은 20마리 정도뿐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백구, 혹은 그보다 큰 녀석들이 나머지를 채운다. 어림잡아 하루 사료 양이 30kg이다. 계절에 따라 많게는 20%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한 달이면 900kg, 1년이면 10톤을 먹어치우는 셈이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 녀석이 무엇을 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름 : 박군)


굶주렸던 개의 첫 끼


구조되어 온 개들의 몰골은 대부분 말라비틀어지기 직전이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대형견에 속하는 백구가 길에서 배부를 만큼 먹을 것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숫대야가 넘칠 만큼 사료를 담아 첫 끼를 준다. 앞으로 먹고 또 먹게 될 밥이다. 사료를 씹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개도 있었고, 씹어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해 토해내는 개도 있었다. 살기 위해 먹는 일,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먹는 일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언제 또 먹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었을까?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료 그릇에 코를 박고 우물우물거렸다. 일단 뱃속으로 집어넣어 저장하려는 것이다. 다른 도움을 주고 싶어도 꾹 참아야만 한다. 섣불리 다가가거나 손을 내미는 순간, 녀석은 밥 먹기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밥을 먹는 것, 그리고 밥 먹기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임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나 뱃속에 자갈이 가득이었다. (이름 : 자갈이)


나흘이 지났을 때


먹고 또 먹었지만 사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애초에 많은 양의 사료를 주었으니 다 먹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은 몸으로 죽을 힘을 다해 먹었음에도 남아 있는 사료. 이를 보고 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니 혼자만의 생각으로 대화를 해보았다.


"왜 아직도 사료가 많이 있는 것이죠?"

"절대로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을 거야."

"왜 그런가요?"

"여기는 너희를 보호하기로 약속한 곳이거든."


나흘이 지나면 배부른 개의 편안한 단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전에 해본 적도 보여준 적도 없는 모습이니 발견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더라도 사료를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냈었다. 아니면 서둘러 입 안 가득 사료를 물고는 구석으로 숨었다. 그랬던 개가 세상모르게 퍼질러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녀석의 첫 끼가 끝났다.



간식 주는 사람의 손을 물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름 : 있을텐데.. 기억이..)


배부른 개를 알지 못했다.


사람도 의식주를 기본으로 삼는다. 몸을 가려 사람 구실을 할 의복, 눈과 비를 피해 몸을 눕힐 집, 그리고 밥.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당연히 밥이다. 배가 고프면 어떤 일도 의미가 없다. 반대로 배가 부르면 비로소 다른 일들에 의미가 더해지기 시작한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첫 끼가 끝난 개도 그랬다.


하루 만에 다른 개가 되었다. 예민하고 때로는 사납게 굴던 개가 얌전해진 것이다. 물론 개들마다 차이는 있다. 여전히 예민하고 사납더라도 그 이유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끈에 엮여 사료 그릇에서 멀어지지 못했던 개가 한 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땅을 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뒹구는 돌멩이를 응시하고, 구석을 삐집고 나온 잡풀을 핥았다. 배부른 개에게 사료는 이제 선택지가 되어 버렸다.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선택지 말이다.


배부른 개가 사료 다음으로 무엇에 관심을 둘진 알 수가 없다. 때가 되어야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배부르기 전의 개에게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알았지만, 배부른 후의 개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개가 옮기는 발걸음을 따라 함께 걸어야만 했다. 사료처럼 확신을 갖고 넘치게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말이다.



<끝맺음>


여기 개들은 뚱뚱하다. 주변인이 걱정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입양을 위해서라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뭐라 해도 상관없다. 더 이상 배고플 일은 없겠지만, 그때의 두려움을 떠올리게 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오늘도 대야 가득 사료를 들이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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