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 하리 나는 바보가 돼버린 걸
만화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에서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아홉 거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거인들은 각각의 특징에 부합한 이름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크기가 엄청 큰 녀석은 초대형 거인.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가진 거인은 여성형 거인이라고 불리는 식이다. 만약 인간들도 이런 식으로 각자의 개성이나 특징에 따라서 분류한다면 나는 아마 '후회형 인간'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후회할 수도 있는 건데 후회형 인간이라는 명칭까지 붙일 일인가?" 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남들만큼만 후회하고 나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성격이라면 이렇게까지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거고.. 만약 후회를 '뒤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뒷걸음질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한다. 물론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후회의 종류도 꽤나 다양하다. '아, 밥 좀 미리미리 해둘걸..' 에서부터 '그때 학교를 그만두지 말았어야 했나?'까지.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많은 결정들을 하곤 하니 이렇게 다양한 후회들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살아가면서 후회 한 점 남기지 않는 사람 쪽이 더 이상한 거다. 본인의 선택에 한 치의 후회도 없는.. 완전무결한 인간.... 이상한 게 아니라 멋있을지도?
아무튼 완전무결한 불세출의 영웅 같은 인간이 아닌 이상 누구나 후회는 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책들도 많다. 후회에 관한 책들 중에 가장 최근에 읽은 건 「후회의 재발견」이라는 책이었는데, 사실 어느 책이든 하는 말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후회하는 능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권과도 같은 것이며, 우리들은 후회를 통해서 반성하고 더 발전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어 하는 말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후회란 오답노트 같은 것이다. 이번에는 이런 선택을 했는데,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의 오답노트.
알고 있다. 오답들을 붙들고 내가 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들을 대입해 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또, 당시에는 그 선택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과거의 나는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로 미숙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생각도, 상황도 바뀌게 되고, 계속해서 '새로운 나'를 과거의 순간에 대입해 보게 되니까. 마치 미래의 나 자신이 과거의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래, 히로의 말대로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다.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야 한다. 그 예리함에 내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하지만 그런 묘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나무위키에 '후회'라고 검색만 해봐도 대처법이 올라와있다. 결국에는 그냥 인정하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내가 미숙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서 나 자신을 '뒷걸음질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인정하는 것은 '앞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는 결국 현재를 외면하고 싶었던 거다. 뒷걸음질 치는 와중에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일 수 있었는데.' 하고 되뇌며. 하지만 더 나은 버전의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한 평행세계에나 존재하겠지. 나는 지금도 뒤를 보고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을 질끈 감게 될지도 모르지만, 앞을 똑바로 보고 걷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마무리 지으며 뒷걸음질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곡을 올린다.
https://youtu.be/wycjnCCgUes?si=v17OxTKjeAtzbo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