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관련된 크고 작은 충격의 후유증은 종종 골반과 고관절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섹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조신한 여자'나 '강한 남자' 프레임에 갇혀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이 경직된 상태로 살다 보면 골반과 고관절이 가장 먼저 굳어지고 뻣뻣해지며 운동범위가 좁아진다.
우리 몸의 뼈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의 실로 꿰어진 듯 연결되어 있는데 그 연결의 출발이며 기반이자 중심은 골반이다. 골반은 섹스뿐 아니라 몸 전체의 건강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과 관습은 골반을 움직이지 말라고 종용한다.
수업이나 프로그램에서 가벼운 몸풀기로 각 관절을 움직이며 돌릴 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깨, 팔, 가슴, 허리, 무릎, 발목 등은 다 무난하게 따라 하는데, 유독 골반에만 오면 민망해하면서 아예 움직이지를 못한다.
골반을 유연하게 움직이면 야유나 야릇한 탄성을 듣게 된다. 사람들은 골반의 움직임을 징그럽게 생각한다. 이해는 간다. 골반이 섹스의 물리적 중심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골반을 흔들림에서 성행위를 연상하게 되고 그래서 창피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골반을 붙들어 매두기엔 그로 인해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굳어진 골반은 그야말로 만병을 불러온다.
척추와 고관절에 문제가 생기고 요근을 경직시키며 연쇄적으로 척구와 모든 관절을 악화시킨다. 또한 척추 질환은 각각의 장기로 연결된 신경 체계를 망가뜨린다.
건강을 위해서 팔다리와 목, 허리를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골반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박 겉핥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춤추는 일이 직업이 아닌 이상 많은 사람들의 골반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위축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골반은 우리 몸 전체의 리듬이 시작되는 곳이다.
균형을 잡고, 무게 중심을 옮기며 방향을 바꾸고, 다양한 동작을 할 때에 모두가 반드시 골반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모든 춤 동작의 원천은 골반이다. 꼭 요란하게 골반을 흔드는 안무가 아니어도 그렇다. 골반이 뻣뻣한 상태에서 춤을 춘다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진다. 만일 강렬한 비트의 신나는 음악에도 저절로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골반이 굳어진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그런데 골반은 뼈라서 원래 딱딱한 거니까 ‘골반이 굳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골반에 관계된 근육, 인대, 고관절이 굳어졌다는 뜻이다. 즉 건강한 골반이라 함은 골반을 둘러싼 근육들이 유연해지고 고관절의 운동능력이 회복된 상태를 말한다.
건강한 골반은 중추적 오르가즘을 위한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된다.
중추적 오르가즘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몸의 조화로운 리듬을 회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추적 오르가즘을 얻기 위한 노력들은
깊은 쾌감의 성취를 넘어서
몸 전체의 조화와 온전함을 추구하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골반의 문제가 있어서 교정하려면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다양한 치료법과 운동 요법들이 있고 모두가 어느 정도는 효력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빠르고 효과적이지는 않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꾸준한 노력과 인내를 요한다. 요가의 아사나(Asana) 수련으로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는 있지만 왜곡이 심한 경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골반은 몸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나 중추적 오르가즘을 위해서나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일상에서도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하나는 ‘땅의 기운을 느끼며 걷기’이다.
걷기의 유익함은 익히 잘 알려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걷기는 한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을 딴 데 두고 걷는 경우가 많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 정신을 뺏기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걷는 것을 다르게 비유하자면, 엄마가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는데 집안일에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아이의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격이다. 아이가 하는 말을 정말로 듣는다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가 말하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아이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반응할 것이다.
걷는 것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자신이 걷는 동작을 매 순간 온전하게 의식해야 한다.
고관절의 움직임, 힘의 전달, 무게의 이동, 지면에 닿는 발바닥, 땅에서 느껴지는 중력, 상체와 하체의 협응 등을 집중해서 느끼고 의식하는 것이다.
특히 땅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땅의 기운이 발바닥에서 다리를 타고 올라와 골반까지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뒤꿈치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 발바닥 전체로 땅을 지그시 밟으며 그 생명의 기운을 골반까지 받아들인다.
어쩌다 야한 쇼(Show)로 발전되고 만 ‘벨리댄스’가 바로 땅의 기운을 골반으로 받아들이는 춤이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신성한 의식 혹은 다산(多産)과 순조로운 출산을 위한 춤이다. 공동체의 여인들이 함께 모여 골반의 생명력을 활성화하고 서로 연결시켜 시너지를 내는 춤이었다.
전에 터키의 프로페셔널 댄서에게 벨리댄스의 기본을 배운 적이 있었다. 나도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골반을 열심히 들어 올렸는데, 그 선생님은 내 동작을 교정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벨리댄스의 골반 움직임은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거예요. 땅을 향해 내리는 힘에 집중하세요. 골반이 올라가는 건 내리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일 뿐이에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벨리댄스의 원형은 남자를 유혹하려는 야한 춤이 아니라, 땅의 기운, 대지의 모성과 만나는 치유와 회복의 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여자들과 함께 모여 이러한 춤을 추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가져보기도 했다.
마침 두 번째 방법은 ‘춤’이다.
‘걷기’를 명료한 의식과 집중으로 행해야 한다면, ‘춤’은 그냥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몸을 풀어놓기만 하면 된다. 신나는 음악을 잔뜩 준비해서 아무도 없을 때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혹은 이어폰으로) 혼자서 마음껏 춤을 추는 것이다.
만일 골반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해도 억지로 동작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몸이 흔들리는 만큼만 허용한다. 춤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섣불리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귀로만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몸도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면 몸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탈 것이고 스스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통제하지만 않는다면 몸이 알아서 저절로 춤출 것이다.
대신 절대로 거울을 보지 않는다.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몸은 저절로 리듬을 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골반도 흔들리게 되어 있다.
걷기와 춤, 이렇게 기억하면 좋겠다.
걸을 땐 의식 충만하게
춤출 땐 의식하지 말고
걷기와 춤추기는 중추적 오르가즘을 위한 기초적인 단계의 노력이다.
중추적 오르가즘을 위해서는 전 장에서 소개한 디아머링도 되어야 하고 이제 소개할 요근의 회복도 이루어져야 하고 심리적이고 정신적 차원에서 섹스에 대해 자유로워져야 하고 공감과 연민과 사랑의 능력도 키워야 한다.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추적 오르가즘은 연금술과 비슷하다. 중추적 오르가즘을 향해 하나씩 하나씩 노력하다 보면 몸이 좋아지고 마음이 맑아지고 의식이 정화된다. ‘부수적’이라기엔 너무 큰 이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