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키스를 좋아하시나요?
키스는 달콤하다고 흔히들 말하니 좋은 거 아니겠나 싶겠지만, 실제로 해보았다면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 만큼이나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쪽은 아마도 여자가 더 많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키스 장면은 너무도 설레고 낭만적이지만, 실제의 키스는 그 환상을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를 좋아하지만 키스만큼은 싫은데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는 여자들도 꽤나 된다.
키스도 섹스처럼 대부분 남자들이 먼저 주도한다. 남자들은 키스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되고 키스에는 특정한 기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부터 오류가 시작된다.
실제로 ‘키스’를 검색해보면 각종 온라인 백과사전에서 키스의 종류들과 그 정의를 내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연인과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거나 전해 온 데이터의 요약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결단코 키스의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데도 정답이라고 잘못 여겨지는 것의 으뜸은 단연 ‘프렌치키스’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프렌치키스야말로 진짜 키스라고 믿는 강박이다. 이런 강박은 아마도 프렌치키스를 ‘딥키스’라고도 부르는 데에서 연유하지 않았나 싶다. ‘Deep (깊은)’이라는 단어가 ‘얕다’는 개념과 대조되면서 딥키스가 아니면 다 얕은 키스, 즉 별 시답잖은 키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이 진짜배기 깊은 키스를 하려면 그야말로 혀를 ‘깊이’ 넣어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강박을 만들어 낸다.
딥키스의 ‘딥’이 감정의 깊이가 아니라 혀가 파고 들어가야 할 깊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키스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 다음과 같은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혀에 힘을 잔뜩 주고 적극적으로 밀어 넣기
혀를 활발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막무가내로 움직이기
침범벅 만들기
키스에 질색하는 여자라면 아마도 위 세 가지 중 하나에 소름이 끼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제발 키스를 혀로 해야 한다는 강박 따위는 깨끗이 버렸으면 좋겠다.
만일 입술과 혀를 소재로 관능적인 영상을 찍는다고 상상해보자. 혀를 길게 내밀거나 날름날름 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감을 주지 않는다.
단연 혀보다는 입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입술 또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이완되어 있어야 한다. 편안하게 저절로 벌어져 있거나, 손가락이나 열매를 빨고 있다든가 하는 모습이 가장 에로틱한 이유는 자의식이 없는 입술이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없다는 건, 내 입술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아무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셜쳐대는 사람이 입술을 쭈욱 내밀고 키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종종 개그의 소재로 쓰이는 건, 그렇게 의지나 기대가 잔뜩 들어간 입술은 징그럽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라는 증거다.
키스는 중추적 오르가즘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과 성기의 감각을 연결시키면서 아래쪽과 위쪽의 에너지가 교류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준다. 생식기에서 시작된 쾌감이 요근을 거쳐 확장되면서 우리 몸 중심을 따라 흐르는 기의 통로를 따라 위쪽으로 승화되도록 유도해준다. 입술이 위쪽에 있기 때문에 이 흐름을 촉진시키기에 매우 유리한 것이다.
키스는 서로 다른 두 입술의 만남이고 섞임이다.
무엇과 무엇이 만나 섞이려면 대단히 섬세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긴장하거나 힘이 들어가면 섞일 수 없다. 내가 무엇을 ‘한다’ 혹은 ‘하겠다’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다만 나 자신이 상대에게 녹아들고 스며들도록 한다.
즉 입술을 포기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가엾은 남자들은 언제나 애정 표현을 먼저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다가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잘못된 키스를 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남자들이여,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입술이 알아서 하도록 맡겨두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나 과즙이 가득한 열매가 입술에 닿았을 때 내 입술은 내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다 알아서 한다는 걸 상기해보자. 여자의 입술이 정말로 사랑스럽다면 내 입술은 알아서 할 것이다. 여자 역시 남자의 입술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면 저절로 밀착하게 되고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혀도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키스할 때 혀를 아예 쓰지 말라는 건 아니다. 먼저 입술과 입술이 섞이다 보면 혀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동참할 수 있다. 마치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기 위해 저절로 혀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절대로 정해진 수순이 아니다. 혀는 키스에 참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억지로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움직이면 혀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힘이 들어간 혀는 징그럽고 공격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상대를 굉장히 불쾌하게 만든다.
우리말에 입술을 ‘빼앗다’ 혹은 입술을 ‘훔치다’와 같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상대의 입술에 위력을 행사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입술의 의지를 포기하라는 의미로 읽혀야 한다.
상대가 나의 입술을 빼앗아 가도록 포기하고 내맡기는 태도가 키스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술을 빼앗거나 훔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빼앗고 훔쳐가도록 내어주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내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입술을 기꺼이 내어줄 때 가장 아름다운 키스가 된다.
영적인 행위에는 반드시 이와 같은 ‘포기’가 따른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나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고, 참된 불자라면 ‘나’란 애초에 없다는 진리를 향해 부단히 수련한다. 모두가 포기다.
키스는 사랑을 향한 작은 포기다.
섹스가 영적인 행위인 것처럼 키스도 역시 영적인 행위다.
자신의 입술을 달콤한 제물로 바치듯 상대에게 내맡길 때 가장 영적이고 가장 관능적인 키스가 된다.
키스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눈을 감게 되는 것 또한 나를 내맡기고 포기하려는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키스는 남자든 여자든 양쪽 모두 서로에게 바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무엇을 해도 괜찮아진다. 살짝 깨물거나, 빨아들이거나, 바람을 넣는 등 어떤 변주를 해도 사랑스러운 유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