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단계 : 종교가 섹스를 억압한다면

by 유주얼

말도 안 되는 일이 참 태연하게도 일어나는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섹스를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 인간을 통제하여 조종하려는 거대한 권력이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본주의고 다른 하나는 종교다.


종교는 사람들의 불행을 먹고 성장한다.

납작하게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면 대체로 이러하다.

“저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옵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고 이 시련에서 구해주시옵소서!”

“저에게 이겨낼 능력을 주시옵소서!”

“저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괴로운 처지에 놓여있거나, 일이 순탄하게 잘 풀리지 않을 때에 사람들은 신을 찾고 기도한다. 종교는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혹시나, 지금 나에게 평안과 행복이 넘쳐 이 평안을 이웃과 어떻게 나누면 되는지, 이 행복으로 인류에게 봉사하는 길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사 절박하게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있었으면 좋겠다.

불행과 역경은 종교를 지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사람들이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종교는 더 확장된다.

사회가 불안해지면 불안해질수록 종교의 세력은 강해진다.

여기서 지칭하는 ‘종교’란 선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스스로 성찰하며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영성과는 별개로, 반드시 자기네 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특정 세력을 이룬 조직’을 뜻한다. 이러한 종교는 조직의 운영과 확장을 위해 사람들의 돈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 무조건적인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물론 이러한 충성과 헌신은 이미 세뇌된 신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행해진다. 하지만 애초에 종교 지도자들이 신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내세워 주입시킨 내용이다. 가장 귀한 것들을 바쳐야 신이 기뻐하시고, 그래야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종교는 ‘죄’에서 출발한다.

“너의 고통과 불행은 죄에서 왔으므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이 우리의 신을 믿어라. 그리고 너의 믿음을 증명해라. 네가 땀 흘려 번 돈을 아낌없이 바치고, 너의 시간과 재능을 우리 종교 조직을 위해 바쳐라.”

종교에서 주입하는 죄의식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다. 인간은 태생부터 죄인이므로 신의 도움과 인도를 받지 못하면 불행해질 것이라고, 이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온갖 슬픔과 고난이 닥쳐올 거라고 겁을 준다.

종교의 주요 고객은 불행한 사람이지만, 당면한 시련이 없는 사람도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언제 어디서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떨쳐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종교가 몸집을 키워서 강한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계속 죄책감과 죄의식을 부추겨서

불안에 떨게 하거나 불행한 상태에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


종교가 말하는 죄란 영(靈)의 세계에서 떠나 육(肉)의 세계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영과 육은 절대 섞일 수 없는 영역으로 서로 대립한다. 영의 세계에 속해있지 않으면 육의 세계에 사로잡힌 것이고, 육의 세계를 벗어나야 영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고 종교는 가르친다. 신의 품에서 살든지 아니면 세속화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종교 안에서 섹스는 명백히 육의 세계이므로 죄의 원인이 된다.


섹스가 허용되는 범위는 ‘순결’이라는 개념으로 제한된다. 순결은 섹스를 철저히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종속시킨다. 합법적인 부부관계에서만 허용되고 자녀를 출산하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는다. 섹스를 최대한 자제하면 자제할수록 순결한 사람, 신실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직자들에게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종교가 섹스를 죄악시하는 건 대단히 효과적인 전략이다. 왜냐면 인간의 성적 욕망은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갖고 노력해도 완전히 제거하기 힘든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종교 안에서 인간은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쳐도 영원한 죄인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아내가 아닌 여자를 보고 성적인 매력을 느끼기만 해도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자연스러운 본능적 욕구가 생겨났을 뿐인데 그로 인해 인간은 거룩하신 신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죄책감에 묶여있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종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성욕이 죄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 불순한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섹스를 최대한 자제하게 된다. 그러면 삶에는 커다란 결핍이 생기고 그 결핍은 많은 문제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처럼 건강한 섹스가 없는 삶에는 반드시 결핍이 생긴다.


이 결핍은 여러 가지 부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물질이나 돈에 대한 집착, 과도한 식탐, 짜증과 분노, 일 중독, 자녀 혹은 타인의 삶에 과몰입, 물리적인 몸의 문제 등 다양하다.

섹스를 죄악시하여 만들어낸 이 많은 결핍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종교는 어서 오라고, 어서 와서 신의 은총으로 그 고통을 치유하라고 부른다.

약을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병균을 만들어서 퍼뜨리는 장사꾼과 같은 짓을 종교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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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의 원천은 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섹스는 우리 자신 안에 그 생명의 원천이 있음을 스스로 느끼게 해준다.

종교는 인간이란 전지전능한 신의 도움이 있어야만 개선될 수 있는 피동적인 존재라고 비하하지만, 섹스는 인간이 스스로 내재된 참된 본성을 일깨워 성화(聖化)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다.


물론 섹스는 육체적 욕망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섹스는 생명을 창조하는 에너지로서 우리의 신성을 발현하려는 영적 지향성을 갖고 있다.

가장 원초적 본능인 먹는 행위도 그저 꾸역꾸역 밀어 넣는 식충이 차원이 있는가 하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미식의 차원도 있다. 더 나아가 음식을 통해 자연 만물과 하나가 되는 우주적 조화를 이룬다면 그것은 가히 영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섹스도 그렇다.

섹스는 가장 정직한 감각에서 출발하여 영적인 차원에 이르는 위대한 여정이다.


종교는 영과 육을 분리시킴으로써 멀쩡한 인간을 분열시킨다.


하지만 몸과 영혼, 혹은 몸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결코 삶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최신의 과학인 양자물리학에서는 영혼이 곧 물질이라고 말한다. 하긴 아직까지 진화론도 인정하지 않는 종교와 어떤 과학적 토론을 할 수 있으랴마는...

종교가 내세우는 신에 대해 깊이 알고 종교의 경전을 날마다 읽어 신의 말씀을 전부 외우고 있어도 나 자신을 모른다면, 나의 몸 하나도 모른다면, 몸이 하는 이야기조차 들을 줄 모른다면 내가 정말 ‘나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종교가 섹스를 억압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내가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존엄을 포기하는 일이다.


내가 욕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들이 누군가 나를 조정하고 통제하고자 만들어놓은 교리와 이념에 이미 세뇌당한 결과라면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다.

섹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떠한 죄책감 없이 모든 가능성이 열린 상태에서 나의 취향이나 욕망에 의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아무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나의 삶을 산다는 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험난한 길이다. 나의 존엄을 침해하려는 수많은 미혹과 싸워야 하고, 나의 자유를 빼앗아 이용하려는 거대한 흐름에 맞서기도 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휩쓸려가는 것을 보며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을 견디기도 해야 한다.

두려움 때문에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까지 붙들어 왔던 신념을 한 번이라도 의심해보거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이미 자유를 빼앗긴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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