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단계 : 자위는 필수입니다

by 유주얼


심리학에 ‘내면 아이(Inner Child)’라는 표현이 있다. 어른이 되었어도 어린 시절에 받은 아픔과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아직 자라나지 못한 아이와 같은 자아가 무의식 속에 남아 있음을 가리킨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내면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의 내면 아이를 만나 말을 걸고 아픔에 공감해주고 상처를 다독이며 위로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하고 상처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하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 세상을 떠났거나 이미 연로해진 부모일 수도 있고, 찾을 길 없는 과거의 사람일 수도 있으며, 어찌해서 찾아냈다 한들 그들이 나에게 준 고통을 인정하고 사과해준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들을 다 떠나서, 나의 내면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나 자신이야말로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을 지닌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하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내면 아이를 만나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아낌없이 축하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똑같은 치유과정인데 몸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는 독려하고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몸에도 내면 아이가 있다. 몸의 내면 아이는 마음껏 발현되지 못한 섹스다. 자연스러운 욕구를 인정받지 못한 섹스, 존재 자체로 수치스러워하고 모욕당한 섹스다. 그 결과로 섹스에 무관심해지거나 아예 싫어지고 아니면 반대로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왜곡된 욕구로 변질된다.


생식기는 몸의 심리적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유년기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집착이나 일 중독, 지나친 성공지향 혹은 과도한 의심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생식기의 욕구가 얼마나 순조롭게 발산되고 성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상태는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섹스는 존재가 탄생하는 근원이고 성장의 목적이며 하나의 생과 다른 생을 연결짓는 관계의 밑바탕인 만큼 우리가 직접 느끼지 못할지라도 그 영향력의 범위는 어마어마하다.


생식기는 독립된 생명체이며 생각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어떤 남자도 의도만으로 자신의 발기를 명령할 수 없고 어떤 여자도 의지로써 애액을 분비시키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생식기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다. 내가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 사회화되었다고 해서 나의 생식기가 저절로 적응력이 생기고 노련해지지는 않는다. 섹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조롱, 상처, 충격, 억압, 학대를 받았다면 그것은 생식기에 고스란히 쌓여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상처받은 아이가 내 몸 안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고 있는 것이다.


몸에 내면 아이가 있다면, 말 그대로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이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보듬어주듯이 생식기도 그렇게 대해줘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다. 일단 새싹이 자라나면 이파리와 꽃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린 다음에야 스스로 순순히 시들어가는 것처럼, 섹스가 존재하는 이상 그 욕구가 한껏 자라나 꽃처럼 활짝 피어나야만 그 열매로서 영적인 진로가 생겨나고 자아(Ego)를 확장하여 초자아(Super Ego)적인 삶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섹스의 상처가 있다면 마땅히 치유되어야 한다. 피어나지 못한 봉오리가 아직 남아있다면 꽃 피워야 한다.

섹스 따위 없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고 계속 무시했거나 방치하는 것은 내 몸의 불행이다. 몸의 불행은 내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음의 불행으로 연결되고야 만다.

비혼이나 독신이어서 파트너가 없다고 해도 섹스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아무나 붙들고 성교를 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섹스는 파트너가 있든 없든 엄연히 내 존재의 근원이며 중심이기 때문에 느끼고 즐기고 발현시켜 에너지를 흐르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의 내면 아이를 만나 보자. 내 안의 섹스를 찾아가자. 상처가 있다면 위로하고, 무관심으로 시들어 있다면 깨워내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한다.


심리적 내면 아이를 나 자신만이 치유할 수 있듯이,

몸의 내면 아이도 나 자신만이 치유할 수 있다.


‘자위(自慰)란 바로 그런 뜻이다.

내 몸의 근원적 결핍을 내가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위를 민망스럽고 부끄럽게 여긴다. 어쩔 수 없는 경우 간혹 허용해도 된다는 정도가 그나마 열린 생각에 속한다.

‘내가 나를 위로한다’는 동일한 행위인데도 그 대상이 마음일 때와 몸일 때 이토록 다른 이중잣대가 사용된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위에 대한 이 크나큰 오해는 자위가 아닌 것을 자위라고 여기는 잘못된 개념에서부터 시작된다.

흔히 남자들의 수음(手淫)은 ‘포르노’ 혹은 ‘야동’이라고 불리는 영상을 보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사실 자위가 아니다. 이것은 절대 내가 나를 위무하는 행위가 아니다.

왜냐하면 동영상 속 음란 행위로 인해 자극을 받으며 흥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나를 자극시키고 흥분시키는 것이 ‘내’가 아니라 영상 속 여성의 나체, 확대된 성기, 변태적인 성행위다. 즉 타자(他者), 더욱이 실체가 없는 허상(illusion)을 통해 나를 위무하려는 행위다. 이것은 결코 자위(自慰 self-stimulation)가 아니다.

물론 자신의 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영상에서 오는 자극을 전달하는 도구로써 움직이고 있을 뿐, ‘나의’ 손이 ‘나의’ 몸을 만진다는 의식은 지워진 상태다.


자위가 진짜 자위가 되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몸을 만지며 위로하고 있다는 의식이 확실하고 명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나를 만지는 게 아니라 남이 나를 만지고 있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다.

여자는 남자들만큼 포르노나 야동을 활용하지는 않지만 상상 속에서 섹시한 남자를 그려내거나 언젠가 보았던 야한 영화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는 등으로 ‘착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결국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스갯소리 중에 세계 자위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방법이 있다. 손 하나를 등에 깔고 한동안 누워있다가 손의 감각이 없어졌을 때 성기를 만지면 마치 남이 만져주는 것 같다고 한다. (1등은 무엇이냐 궁금하겠지만 이 농담이 만들어질 때부터 1등은 비밀로 설정되었으니 궁금해 마시길)

내 몸을 만지고 있는 내가 ‘나’가 아니라 ‘남’이라고 스스로 속이는 것—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자위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수음(手淫)은 단지 성욕을 해소시킬 뿐이지만 그 대가로 수치심을 남기게 된다.

뭔가 불결하고 더러운 짓을 했다는 느낌의 근원은 ‘거짓됨’에서 오는 것이다. 생식기를 만졌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속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이다.

포르노와 야동에 의지하는 수음은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에너지를 상하게 한다. 성욕은 왜곡되고 폭력적으로 변질되며 점점 더 진정한 만족과는 멀어지게 된다. 더욱이 이렇게 병들고 피폐해진 성욕은 상대방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진짜 자위는 나와 내 몸의 진솔하고 내밀한 ‘소통’이다.


내가 내 몸의 내면 아이와 대화를 하는데, 의식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어떤 허상의 이미지를 들이댄다면 진솔한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 야동이나 야한 상상으로 하는 자위는 영혼 없는 대화, 영혼 없는 거짓 소통이다.

내면 아이를 만나듯이 온전한 ‘나’로서 맑은 의식을 지니고 몸을 만지면, 자위는 내 몸을 부드럽게 위로하면서 치유하는 힘이 된다.


의식이 충만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자위는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내가 나에게 주는 모든 선물, 예를 들면 느긋한 샤워, 기분 좋은 음악, 향기로운 차 한잔과 마찬가지로 자위는 ‘힐링’의 한 종류이다.

남자가 자위를 하려면 맨몸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반면 여자는 손의 사용 범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질 속으로 삽입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전동 제품만은 피해야 한다. 전동 제품이 주는 인스턴트적인 자극으로 인해 성적인 감각을 다양하고 조화롭게 일깨우는 데에 방해가 되고 쾌감의 깊이를 탐색하는 길을 오히려 막아버린다.


자위를 할 때에는 스스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실내온도를 쾌적하게 맞추고 침대를 깔끔하게 정돈한 다음 조명을 은은하게 하며 마사지 오일 등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진행한다는 점이다. 매 순간 몸의 원하는 바를 귀 기울인다.

명상과 같은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전에 했던 습관 때문에 자꾸만 다른 상상이 끼어들 수 있으니, 온전히 내가 나를 어루만지고 있다는 자각을 일깨우도록 한다. 필요하다면 내가 나에게 말을 해주어도 좋다.

쾌감이 절정까지 오르는 모든 진행 과정을 조급하게 재촉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을 가진다.

느껴지는 모든 미세한 감각을 놓치지 말고 그 감각 속으로 깊이 몰입한다.


남자의 경우 손으로 성기를 잡고 무조건 빨리 움직이는 동작은 금한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부드럽고 섬세하게 다양한 터치를 시도하면서 시간을 두고 진행하도록 한다.

여자는 질 안쪽을 자극하기 전에 반드시 클리토리스(음핵)를 거쳐야 한다. 간혹 남자의 성기가 삽입되는 곳이 질이기 때문에 클리토리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있다. 그래서 질이나 자궁목보다 클리토리스에서 더 많은 흥분이 느껴지는 자신이 비정상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단연코 그렇지 않다.

클리토리스의 감각이 발달했다고 해서 그만큼 질과 자궁목의 감각이 반비례하여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질과 자궁목의 감각이 부족한 것은 그 자체의 문제이지 클리토리스 때문이 아니다.

질 안쪽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디아머링이 필요하다. 9장에서 소개한 방법을 참고하여 꾸준히 실행하기를 권유한다.


비혼이나 독신이라면 자위는 필수다.

파트너가 있는 경우라도, 섹스에 문제가 있거나 만족하지 못한다면 역시 자위는 필수다.

자위는 내 몸과 이루는 가장 깊은 교감으로서 효과가 매우 확실한 자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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