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섹스 판타지(Sex Fantasy)는 무엇이냐고, 친구들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살고 있어서 소위 ‘유교걸’은 아니라고 생각한 친구들인데 그들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섹스 판타지’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아주 천천히 하는 것, 거칠게 눕혀져서 발가벗겨지는 것, 비에 젖은 몸으로 흠뻑 달아오르는 것 등을 자신의 섹스 판타지라면서 수줍게 고백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이런 류의 상상은 섹스 판타지가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냥 ‘섹스의 기대’ 정도라 하겠다.
판타지는 말 그대로 판타지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고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해보는 게 판타지다. 판타지로 그려보는 상황을 현실로 끌어들인다는 전제가 아예 없기에 어떠한 제한도 한계도 없는 순수한 상상이다.
그래서 사실 섹스 판타지는 아무에게나 얘기하기 어렵다. 부부나 연인 사이거나 아주 친한 사이일 때 혹은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워크샵 같은 데서 공개되곤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섹스 판타지의 큰 틀만 공개하면, 어떤 고대 국가의 성대한 제의에 내가 제물로 바쳐지는 상상이다. 굉장히 컬트적이고 기괴하며 공포스럽기도 하다.
이렇듯 섹스 판타지는 도덕이나 윤리, 관습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섹스를 상상해볼 때 몹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쯤 되면 내심 놀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헉...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봐.’라고 말이다.
물론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대표적인 섹스 판타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공공장소에서 몰래 하는 섹스 혹은 성적 접촉, 그리고 심지어 들키는 상상
섹스에서 지배당하기, 혹은 지배하기
쓰리섬(Threesome), 혹은 그룹섹스
전혀 낯선 사람과 하는 섹스
사회적 관계의 지인 (이웃, 직장 동료나 상사, 파트너의 지인 등)과 하는 섹스
어떤가? 모두가 관습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위, 혹은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심지어는 위법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불순한 상상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충격을 받거나 실망하기도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상상을 하는 거지? 내가 왜 이런 욕망을 갖고 있는 거지? 나는 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나? 나는 나의 파트너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건가? 나는 원래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인가? 내가 이렇게 지저분한 인간인가?’
그렇지 않다. 자책할 필요 없다. 안심해도 된다.
호주 태생으로 뉴욕에서 활동 중인 심리 치료사, 성(性) 학자, 섹스 코치인 신디 다넬(Cyndi Darnell)은 이렇게 분석한다.
“섹스 판타지는 정말로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원해서 생겨나는 게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환상은 섹스와 상관없이 우리가 직장이나 가정 등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소화시키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어줍니다. 섹스 판타지가 나에게 강렬하게 작용하는 이유는 단지 판타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판타지의 목적은 무언가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잠재된 성적 욕망의 반영이 아닙니다.”
공공장소에서 성행위를 해보고 싶다는 상상은 정해진 규칙과 틀을 깨고 싶다는 해방감, 자유에 대한 갈망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섹스 장면을 누군가 엿본다거나 사람들에게 들키는 상상은 ‘나의 관중’를 갖고 싶다는 의미로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망일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는다는 상상으로 흥분이 된다면, 그건 당신이 추잡한 변태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의 모든 사회적 관계의 복잡함과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일 확률이 더 높다.
지배당하거나 지배하는 섹스 판타지 또한 아주 보편적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그토록 인기가 많았던 이유다. 피지배욕, 그러니까 상대에게 완전히 굴복하여 지배당하는 상상은 궁극적으로는 자아(Ego)가 소멸되는 해탈의 욕구와 닿아 있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피지배욕은 사회적인 차원으로도 해석된다.
상대를 완전히 지배하거나 상대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등 섹스에서 ‘힘의 유희’를 꿈꾸게 되는 이유는 자신이 맺고 있는 여러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긴장감에 지쳤기 때문이다.
일과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이나 사적인 일상에서도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역학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에 한 순간이라도 그 긴장을 놔버리고 싶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밀고 당기던 그 줄을 마음껏 휘두르거나 아니면 그 줄에 꽁꽁 묶여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섹스의 유희로 상상해보게 되는 이유다.
지배당하고 싶은 판타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강한 자아에 대한 피로감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배하고 싶은 판타지가 반드시 폭력성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듯 섹스 판타지는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쓰리섬(Threesome)이나 그룹섹스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면 주인공이 되어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 혹은 강한 소속감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뜻이다.
낯선 사람과 섹스하는 상상을 한다면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한 집착과 질투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려는 과정, 혹은 적정선을 넘어서 자신의 세계를 침해하는 데 대한 분노를 해결하려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실의 어떤 압박이나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배우자나 연인의 친구라든가 이웃이라든가 직장 상사라든가 하는 지인과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나 미친 거 아냐?’하며 놀랄 필요 없다. 진짜로 부정을 저질러서 나의 파트너를 배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비로운 차원을 열어줄 섹스의 새로운 국면을 원하고 있는 것뿐이다.
혹시나 자신이 극도로 증오하고 있는 인간과 섹스하는 꿈을 꾸거나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내면의 증오가 사라지고 평화를 얻기 바라는 선한 본성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러한 섹스 판타지 외에 더 기상천외한 상상도 할 수 있는데,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통제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섹스 판타지가 가지 못할 영역은 없다.
자신의 섹스 판타지가 현실적으로 볼 때 너무나 수치스럽고 민망한 행위들로 가득 차 있다 해도, 이불킥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 상상을 떨쳐버리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생겨난 그 상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즐겨도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판타지 왕국 속에서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이 어떻게 마법처럼 화해되는지를 관찰하는 기쁨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감정과 갈망의 화해 과정이 왜 하필 섹스 판타지로 발현되는 걸까?
섹스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뿌리에서부터 깨달음을 향한 영적인 성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레벨의 에너지를 아우르는 소통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길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섹스 판타지라는 형식으로 내가 나에게 보내는 솔직한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