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적 오르가즘(Cervical Orgasm)은 신기한 기술이 아니다.
보통의 섹스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고차원의 비법도 아니다.
중추적 오르가즘은 누구나 경험해봐야 할 자연의 선물이다. 생명의 축복이다.
중추적 오르가즘은 내 몸의 에너지를 정화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일이 그 시작이다. 위와 장을 가볍고 편안하게 한다.
틈틈이 나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 나의 몸 구석구석을 사랑으로 쓰다듬어 준다.
꾸준한 명상과 디아머링(De-amouring)을 통해 생식기의 무감각과 통증을 치유하면서 특히 자궁목의 감각을 회복한다.
자주 걷고 춤추면서 골반 전체에 뭉치고 굳은 기운을 풀어주어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평상시에 활동할 때나 운동할 때 내 몸의 코어인 요근을 인지하면서 모든 관절의 움직임에 더 깊이 집중한다.
전 장의 내용들로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면 중추적 오르가즘을 얻기 위한 노력은 건강한 몸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다르지 않다. 군살이 없고 탄탄한 근육이 형성되어 겉으로만 건강해 보이는 몸이 아니라, 생명의 감각이 살아있고 몸 전체의 기운이 원활하게 흐르는 진짜 건강한 몸 말이다.
진짜로 건강한 몸은 마음까지 건강한 몸이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어쩔 수 없어서 풀어 쓴 것일뿐, 사실 몸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몸이다.
전에 명상을 뇌 과학의 차원에서 설명하던 어떤 강사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마음은 뇌에 있을까요, 가슴에 있을까요?”
그 자리엔 상당히 많은 청중이 있었는데, 이미 강연의 주제를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대부분이 뇌에 있다는 쪽에 손을 들었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딱 한 사람만이 마음이 가슴에 있다는 쪽에 손을 들었다. 강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뚜렷한 이유를 대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당시에 그분이 과학적 상식이 떨어져서 그렇게 생각하겠거니 하고 주제넘게 짐작했다.
하지만 그 후에 내가 요가와 명상을 스스로 나의 몸으로 익히고 수련하면서, 또한 소마틱스(Somatics)와 동의보감을 일부나마 공부하고 나서, 문득 과거 그 강연의 현장이 떠올랐을 때 모두가 ‘예’라고 하는 중에 유일하게 ‘아니오’를 외쳤던 분의 확신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마음이 뇌에 있다는 주장은 감정의 작용과 뇌의 활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데에 근거한다. 뇌의 특정 부위와 감정들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희로애락 각각의 감정에 따라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반대로 뇌의 어떤 부위가 손상되거나 자극받을 때 어떤 감정이 생성되는지 연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뉴런의 움직임이 감정을 만든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수억 개의 뉴런이 보내는 전기신호가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게 된다. 슬플 때나 감동을 느낄 때도 가슴에 손을 얹는다. 억울하거나 분노가 차오르면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도 한다.
가슴이 뜨끔하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가슴이 답답하며 가슴이 따뜻해지고 또 뜨거워진다.
이것들이 단지 비유가 아니라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가슴은 몸을 상체와 하체로 나누었을 때, 상체의 가운데 위치해 있다. 복부의 장기와 머리 사이에 있다.
이러한 가슴의 위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몸의 각 부분은 담당하는 기능 자체와 더불어 구조와 위치와 모양새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생식기가 모든 장기의 아래쪽을 받쳐주듯이 위치해 있는 이유가 있고, 배꼽이 몸 전체로 볼 때 위아래 좌우의 중심에 있는 이유가 있다. 이마가 왜 두 눈의 위쪽에 펼쳐져 있는지, 왜 사람의 머리는 동물들처럼 몸의 앞쪽에 달려 있지 않고 몸의 맨 위에 얹혀 있는지 다 이유가 있고 그 의미는 심오하다.
이러한 신체 구조의 원리를 요가에서는 ‘차크라(Chakra)’를 통해 해석한다.
차크라는 '소우주(Micromsom)'인 나와 ‘대우주(Macrocosm)’가 에너지를 소통하고 교류하여 공명(共鳴)을 이루는 채널이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것은 대우주의 운행 원리가 인간 존재 안에 모두 구현되어 있다는 뜻이다.
세상에... 대우주라니! 사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일평생 여행만 하는 사람이 땅 위만 부지런히 밟고 다닌다 해도 지극히 일부분밖에는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도 태양계에 속해있는 작은 행성일 뿐이다. 태양계 역시 우리 은하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우주에는 수천억 개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대우주란, 어쨌든 표현하기는 해야 하니까 클 ‘대(大)’자를 써서 대우주지, 크다는 말로는 그 실체를 털끝만큼도 건드려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차원이다.
그런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우주라고 한다. 내가 대우주의 미니어처라는 것이다.
그러니 내 몸의 구석구석이 전부 다 얼마나 신비하고 위대한지 모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깊이 느끼면 곧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다.
주요한 일곱 개의 차크라들은 우리 몸 중심선을 따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정렬해 있다. 차크라의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일일이 나열해봤자 복잡하기만 하니 번호로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번 - 기초적인 신체 지지력, 활동력
2번 – 성 에너지, 창조력
3번 - 욕망, 열정, 자신감
4번 – 공감, 연민, 사랑
5번 – 영적인 차원의 감수성
6번 – 정신의 중심, 통찰력
7번 – 영적 각성, 깨달음
이들 중에 4번이 가슴 위치에 해당한다.
아나하타(Anahata) 차크라라고 부르는데, 이름의 뜻은 ‘끊어지지 않음’이다.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연결을 통해 살아나고 연결을 통해 존재한다는 뜻이다.
가슴은 장기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중간에 위치하여 욕망과 정신, 욕망과 영혼을 연결한다.
욕망과 열정을 올바른 정신과 맑은 영혼으로 이끄는 것이 가슴의 할 일이다.
그 일이 무엇이겠는가?
사랑이다. 사랑밖에는 없다.
가슴의 에너지는 사랑이다.
가슴은 중추적 오르가즘의 프리즘이라 할 수 있다.
자궁목(Cervix)에서 골반 전체로 확산되면서 요근(Psoas)을 타고 올라온 오르가즘은 가슴을 거치면서 찬란한 무지개로 빛을 발한다.
쾌감이 사랑으로 승화되고, 사랑이 영적인 깨달음으로 승화되는 곳이 가슴이다.
깨달음, 즉 해탈은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 뭇 생명이 하나다, 내 안에 우주가 있고 우주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진리를 귀로 듣고 논리적으로 헤아려 깨달을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해탈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슴의 에너지는 해탈의 열쇠다.
가슴이 열려있지 않다면 중추적 오르가즘은 불가능하다.
가슴이 막혀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정이나 사회의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매는 제약들, 감정의 억압, 지나친 의무감, 이기심과 탐욕 등이다.
내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내 몸부터 차츰 변화시키면 된다.
가슴을 활짝 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일어난다.
요가를 지도하다보면 정말로 많은 분들이 어깨와 등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려운 요가 자세(아사나 Asana)가 아니더라도 폼롤러를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가슴이 펴지면 누구나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어떤 분들은 가슴이 펴진 것만으로 저절로 눈물을 흘리면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슴을 폈을 뿐인데 이유 없이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은 괴로움이 모두 사라졌다며 신기해 한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어렸을 때부터 약간의 측만이 있었던 요추 부분을 교정하면서 다소 강한 충격을 가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한 적이 있었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굽어있던 부분이 펴지면서 거기에 쌓여있던 감정이 터져 나온 것이다.
등과 어깨가 굽어있다면 그 안에는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이 눌려있고 숨어있다.
펴주면 된다. 펴주면 빠져나간다.
<가슴 펴주기>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폼롤러를 가슴 아래 가로지르도록 놓고 그 위에 누워있는 것이다.
롤러의 정확한 위치는 여자의 경우 브래지어가 등을 지나가는 선, 남자라면 날개뼈 바로 아래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폼롤러 위에 올라간 가슴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몸 전체를 편안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팔은 가능하면 어깨 높이와 맞추어 양옆으로 벌려놓는다.
온 몸을 중력에 내맡기면서 호흡과 함께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0.001mm라도 가라앉는다.
명상과 같이 온전히 내 몸에만 집중한다.
뻐근하고 아파도 그 아픔을 피하거나 막으려 하지 말고 아픔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아픔 속으로 들어가야만 아픔이 사라진다.
처음에 폼롤러가 너무 힘든 분이라면, 요가 매트나 큰 타올을 똘똘 말아서 깔고 누워도 된다.
중추적 오르가즘이니 대우주와의 합일이니 깨달음과 해탈이니 하다가 그 해법이 고작 폼롤러 위에서 가슴 펴기로 귀결이 되니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다시 한번 몸의 신비를 상기한다면 우습지 않을 것이다.
몸은 곧 마음이다. 몸이 달라지면 마음이 달라진다. 우주의 에너지와 공명을 일으킨다.
물론 굽은 등이 펴졌다고 단번에 깨달음이 오지는 않는다. 단번에 중추적 오르가즘이 가능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변화가 생긴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라도 분명히 생겨난다.
가슴이 펴지면 마음이 열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들어온다.
만의 하나, 중추적 오르가즘까지 가지 못한다 해도 어떠한 형태로든 긍정적인 에너지는 자라난다.
더불어, 여자의 가슴이 열리면 젖가슴의 성감도 함께 발달한다. 유두를 애무해도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이라면 등이 굽어있고 가슴이 닫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남자가 여자의 등을 마사지해주면서 굳은 긴장을 풀어주고, 유두를 자극하기보다는 앞쪽 가슴을 사랑의 손길로 쓸어준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