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아기를 재우고 살금살금 방을 나섭니다. 아기는 방 밖에서 쿵쿵대는 소리보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엄마가 저를 두고 나간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아는 것이지요. 저는 문 손잡이를 끝까지 잡아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여 방 문을 살짝 닫고 나옵니다. 그리고는 여지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젖힙니다. 오늘은 목 넘김이 시원한 라거 맥주를 골랐습니다. 살금살금 베란다로 나가서 간이의자에 앉아 맥주캔을 시원하게 땁니다. 캔 따는 소리는 기대만큼 경쾌합니다.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꼴깍꼴깍 넘깁니다.
반짝이는 야경은 어쩐지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처음 야경에 설레었던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많은 학교가 그렇듯, 저의 모교도 여학생들의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주고자 산 중턱에 위치했더랬습니다. 1학년은 1층, 2학년은 2층, 3학년은 3층을 썼었습니다. 가장 높은 층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문득 시선을 돌린 창 밖은 지방소도시 시내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불빛들 사이에 무언가 신나는 것들이 숨어있을 것 같은 생각에, 당장이라도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 나가고 싶었더랬습니다. 그 심장의 울렁울렁함이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라 ‘나는 전생에 불나방이기라도 했던 걸까. 어쩜 이렇게 불빛들 사이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걸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더랬습니다. 야자시간이 고단할 때면 창 밖 야경을 바라보며, 괜히 혼자 들떴다가 체념했다가 우울했다가 현실을 수용하는 패턴의 반복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일탈을 실행에 옮겨보진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학생 신분에 충실했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찬란한 불빛들 사이에 뛰어들어 본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습니다. 야경을 만들어내는 도시의 타오르는 듯한 불빛들 사이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청춘을 태워보던 시절이 있었더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거창할 것은 없었습니다. 함께 양껏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너를 받쳐주었다가 내가 기대었다가 하는 흔한 청춘의 조각이었습니다.
라거를 홀짝이고 있는 지금 제 눈앞의 야경은, 내 아기가 곤히 잠들고 나의 하루는 끝났어도 세상 어딘가는 바쁘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증일 뿐이지요.
저희 집은 아침마다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계절의 냄새를 느끼며 오늘의 날씨를 내다봅니다.
여름동안 며칠에 한 번씩은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아기와 함께 매미에게 인사를 해주기를 여러 번이었습니다. 매미의 수명은 일주일이라는데, 계산해 보니 매미의 1분은 사람에게 2~3일의 시간이더라고요. 어서 바삐 짝을 찾아가길 바라며 방충망에 붙은 매미를 멀리 날려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매미도 보이지 않고, 매미울음소리도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쩜 9월이 되자마자 이렇게 바람이 시원해질 수 있지?”
오늘 아침 남편이 놀라며 한 말입니다. 그러게요. 어제 하루동안 세차게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어제와는 아주 다른 계절이 되어있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입니다만, 계절과 계절 사이에는 ‘비 오는 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한 계절의 커튼콜마냥, 종일 비를 뿌리고 나면 다음 계절로 넘어가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절의 끄트머리쯤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비가 오는 날이면 이 계절과는 안녕하는 하루로 삼고는 합니다. 매번 저의 예측이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몇 번이고 이별의 날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다음 계절을 맞기도 한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편히 한 여행보다 고생스러웠던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더라구요. 지독히도 무더운 여름이었으나 보내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한편으로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작년 여름엔 아기 6개월 차부터 열심히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었습니다. 휴대용 유모차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이 귀찮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기띠로 열심히 안고 다녔더랬습니다. 문화센터 수업 전, 카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게 낙이었습니다. 팔을 뻗어 휘젓는 아기의 손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불편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그마저도 즐거웠습니다.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면, 건물 지하 식품매장에 들러 간단하게 장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아기에게 “무화과를 살까, 바나나를 살까?” 혼잣말을 해가며 식품코너를 헤매고 있는데, 멀리서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께서 저희 모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 맘 때쯤 아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그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제가 아기 대신 인사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그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놓고도 스스로 놀랐더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께서 "아기를 꼬옥 안고 다니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해 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칭찬에 놀라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얼이 빠져서는 어떻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요즘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걸 보면, 저의 작년 여름 한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올여름의 아기는 잘 걷고 잘 뛰어다는 아기였습니다. 아기와의 돌발상황이 예측불가하여 산책 때마다 커다란 기저귀 가방에 짐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무거운 디럭스 유모차를 끌고 가야 했기에 마음을 크게 먹어야 산책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저는 작은 크로스백 하나를 매고, 아기는 신발만 신겨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저 마음이 내켜 그렇게 해 보았던 것이 큰 전환점이 되어, 그 후로는 거의 매일 산책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산책 코스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지점들을 하나씩 쌓아갔습니다.
아파트에서 거리로 나가는 길 사이에 있는 덤불은 매미 허물이 많이 붙어있어 ‘매미 껍질 덤불’입니다. 지나갈 적마다 아기와 함께 쪼그려 앉아 덤불에 붙은 매미 허물들을 톡톡 건드려보곤 합니다. 덤불 뒤에 여러 그루의 조경수들에는 한 나무에도 매미가 대여섯 마리씩 붙어있어 아기는 올여름 매미를 실컷 보았더랬습니다. 그러다가도 사방으로 울리는 매미 울음이 높아질 때면 우리는 귀를 양손으로 막고 우다다 달려 ‘시끄러운 길’을 지납니다. 거리로 접어들면 하수구 빗물받이 쪽에 종종 날파리들이 날아다닙니다. 아기는 양팔을 휘젓고 양다리를 번갈아 차는 시늉을 하며 날파리들을 열심히 쫓아내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공원의 큰길로 들어서면 까치도 있고 까마귀도 있고 비둘기도 있습니다. 아기는 까악 까악 소리를 내며 까치가 되었다가, 비둘기가 되었다가 매미가 되기도 합니다. 지나는 강아지들에게 전부 인사를 해주고, 종종 먼저 인사를 건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답인사도 하고 다닙니다. 그러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를 만나면 요구르트를 사고, 아니면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서 벤치에 앉아 목을 축입니다. 한 번은 지나는 아주머니께서 그 모습이 예쁘다고 사진을 찍어주고 가기도 하셨답니다. 아기와 있으면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가 이렇게도 가까워질 수 있다니, 종종 이렇게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아기가 양껏 산책을 즐긴 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엄마의 체력이 슬슬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면 집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올여름 아기는 자기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엄마 옆에서 엄마 흉내를 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싱크대에 의자를 두고 올라서서 설거지하는 시늉을 하거나, 가끔 엄마가 쥐어주는 야채를 열심히 씻어서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을 무척 즐겼습니다. 엄마가 샤워를 할 때면 세면대 앞 발받침대에 올라가서 미끌거리는 비누를 가지고 이리저리 연구를 해봅니다. 엄마의 샤워가 끝날 때까지 실컷 놀고도 마음이 아쉬워서 자리를 뜨길 거부했더랬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었기에 옷차림이 가벼워지다 못해 종종 기저귀바람으로 다닐 적엔 베란다에 나가 호스로 여기저기 물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두 개나 있는 비눗방울 장난감을 다 켜두고 온 베란다를 몽글몽글 비눗방울 천국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그야말로 여름을 양껏 즐긴 아기였습니다.
가을로 접어들며 아기는 드디어 어린이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회사로 돌아갈 시기에 맞춰 아기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회사일에 한참 번아웃이 왔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답니다.
‘하루 중 9~10시간을 회사에서 일하는 데에 쓰고, 퇴근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고작 3~4시간인데, 그러면 나는 일을 하려고 태어난 건가. 이렇게 살며 내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사용하는 시간의 질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양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저 의문에 대한 정답은 아직 찾질 못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기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엄마, 아빠와 있는 시간보다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이 저에게는 다소 슬프게도 느껴졌습니다.
선선해진 아침 공기에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끼며, 몸은 고단했어도 아기와 종일 함께여서 너무나도 행복했던 그 시절 또한 함께 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유한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행복한 순간'을 마주할 때, 자연스레 그 끝을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날, 무심코 눈을 떴을 때 이 행복했던 시간이 어느덧 지나있음을 알게 되겠지.'
아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면 천천히 음미할 수나 있지요. 나를 두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것들은, 한 순간도 그 자리에 기다려 준 적이 없습니다. 아기와 함께여서 행복한 순간마다, 흘러가는 시간의 꼬리 끝을 잡으려 허둥대는 손짓이 마음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럴 때면 벅차게 행복한 마음 한구석, 작은 먹먹함도 함께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집 등원 2주 차인 아기는 제법 잘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 첫 사회생활. 엄마의 심란한 마음보다 아기의 스트레스가 훨씬 크겠지요.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엄마는 지금 아기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응원해주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아기 앞에서는 차마 티를 내지 못하고 글로만 이리 풀어봅니다.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하는 마음 속 지배적인 긍정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만, 오늘은 아기가 좋아하는 달이 유난히도 밝은 날입니다. 이리도 밝은 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기를 재워버린 데다가 라거도 한 캔 마시고 있으니, 괜히 아쉬움만 크게 느껴져 처연히 글을 적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름이 가도 더 멋진 가을이 오겠지요. 하얗게 눈이 쌓일 겨울도 기대가 됩니다. 비구름이 개고 날이 좋으니, 내일은 월출 때부터 아기에게 달님을 보여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