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 일기

by 이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태교 일기를 모아 한편으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2년 가까이를 엄마로 살아온 지금의 저와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저는 또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당사자만 느끼는 미묘한 차이일 테지만요. 하하. 꾸준히 적었던 것은 아니나, 저에게는 이 또한 소중한 기록이라 다시 펼쳐 재편해 봅니다.


5주 1일

아침부터 핫초코가 당겨서 회사 앞 커피숍에서 한잔 살까 하다가 8시 55분이라 사무실에 후다닥 올라왔다. 도착하자마자 핫초코부터 한잔 타서 마시고 초콜릿 몇 개를 먹고 나니, 지난주쯤에 초콜릿을 대여섯 개씩 까먹었던 게 번뜩 생각이 났다. 탕비실에서 초콜릿을 한 움큼 집어오며 조금 창피하면서도 그 손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임신해서 초콜릿이 당겼었나 보다.


5주 2일

든든아, 너는 왜 이렇게 물을 좋아하니. 덕분에 난 흡사 물먹는 하마가 된 것 같다.

복통이 지속적으로 있음. 어제는 진짜 배가 찢어지는 듯했다. 1분만 참다가 응급실을 가려고 했는데, 이 짜식이 또 아빠 닮아서 눈치는 엄청 빠르네. 적당히 괴롭히다가 후퇴해서 할 말이 없다. 네 탓이 아니겠지. 그게 뭐든 엄마가 조심할게 미안해.


5주 4일

오늘은 신체 컨디션은 좋았는데, 왠지 우울한 날이었어. 그래도 든든이가 있어서 든든해! 든든이가 생기고부터 엄마는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아. 참 신기하지? 이쁜 든든아 건강하게 자라서 만나자.


5주 6일

든든아 엄마는 입덧을 시작한 것 같아. 정말 웃기지 않니? 든든이한테 영양소가 많이 가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데 입덧으로 음식이 들어가는 걸 막다니. 정말 이건 신세적 시스템 오류라고 본다.

오늘 홍대 거리를 지나며, (든든이가 커도 홍대가 여전히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일지 궁금하네.) 엄마는 이제 다른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어. 든든이 아빠는 엄마를 위로해 주려고, "50대, 60대가 되어도 둘이 신나게 놀러 다니자."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술 마시며 방탕하게 놀던 시절은 지나갔지 뭐니? 그래도 괜찮아. 그런 아쉬움은 건강한 든든이를 만날 날들에 비하면 저울질할 만큼도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는 아빠 덕분에 엄마는 마음도 차근차근 잘 정리하고 있단다. 오늘은 엄마가 말이 길었네. 얼른 자자.


6주 1일

아웅. 엄마는 오늘 정말^^ 바쁜 날이었단다. 엄마를 짜증 나게 한 사람들은 아빠가 다 같이 욕해줬어! 덕분에 아빠가 치킨도 미리 시켜줬지. 바빠도 아빠 덕분에 행복하게 마무리 한 날이었단다.

우리 든든이 눈치도 빨라서 엄마 오늘 바쁘다고 참 얌전히 잘 있어줬네. 고마워. 오늘 하루 종일 엄마 스트레스를 같이 겪었을 든든이도 고생했어. 내일부턴 좀 더 여유롭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보자.


7주 3일

든든아 안녕. 오랜만이야. 엄마는 입덧이 슬슬 시작되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 뻗어있느라 바빴단다. 그래도 든든이 생각은 매일 하고 있어!

엄마는 사람이 감투를 쓸 때 본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어떤 자리에서건 항상 겸손하려 노력했는데 든든이를 가지고 임산부가 되었다는 감투가 너무 달콤한 요즘이야. 나는 든든이 엄마다!! 하면서 괜히 으쓱하고 발걸음도 당당해진단다. 엄마 뱃속에서 신나게 있다가 건강하게 커서 만나자.


7주 4일

오늘은 엄마 친구가 배우로 나오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간만에 아빠랑 데이트를 했지 모야. 북악산 팔각정에 올라가서 라면을 먹었는데, 글쎄 요 쌀쌀한 날씨에 라면 한 그릇이 왜 이렇게 맛있는지. 아빠가 엄마에게 라면 두 개를 고르라고 해 주어서 신라면, 참깨라면 이렇게 두 개 시켜서 둘이서 후루룩 다 나눠먹었단다. 이담에 든든이가 라면 맛을 알게 될 나이가 되면 꼭 다시 아빠랑 와서 같이 맛있게 먹을 날을 기대해 보았어.

팔각정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커다란 돌 보도블록 사이로 새싹이 몽글몽글 올라온 걸 보며, 엄마 뱃속에서 새싹처럼 자라고 있을 든든이를 생각해 보았단다. 엄마도 마음을 편히 하고 좋은 기운만 든든이에게 주도록 노력할게.


8주 1일

든든아. 엄마가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엄마랑 딸이랑 신랄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오더라구? 든든이가 딸인지 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든든이랑 엄마랑 저렇게 신랄하게 싸울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지 뭐야? 그래도 든든이가 건강하게 자라준다면야 사춘기에 엄마와의 싸움쯤이야 별 일도 아니지 뭐!

든든이가 생겨서 엄마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충도 많단다ㅠㅠ 든든이한테 칭얼대는건 아니구. 왜, 그렇잖아. sns에 올라오는 좋은 소식만 보고 타인의 삶이 마냥 핑크빛인 양 보이는 건 나한테는 좋지 않은 것처럼. 엄마가 임신한 기간이 마냥 행복하다고만 하면 든든이가 나중에 부모가 될 때 힘든 기간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하는 얘기 들야.

사실 요즘은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체력이 많이 떨어졌어. 엄마는 가끔 새벽에 일어나서 헬스장에 러닝도 가곤 했는데 요즘은 계속 누워만 있는 일상이야. 사실 사사로운 집안일 할 힘도 없구, 예쁜 옷을 찾아 입기도 힘들어서 옷 몇 벌을 돌려 입으며 겨우 출근하고 있단다. 그래도 든든이만 건강하게 자라준다면야 엄마는 바랄 게 없어. 엄마도 좋은 체력 회복하려고 노력해서 나중에 든든이랑 열심히 놀아줄게!


30주 1일

든든이가 그저께쯤부터 자꾸 딸꾹질을 한다. 산모들이 태아 딸꾹질과 본인 맥박 뛰는걸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데, 그래도 막상 뱃속에서 아기가 딸꾹질을 하면 엄마는 알아채지나 보다.

‘임신출산육아대백과’가 베스트셀러라 샀는데, 게으른 엄마는 매일 반성을 하면서도 이 두꺼운 책을 열어보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진작 좀 읽어두었더라면, 딸꾹질하는 든든이가 걱정되어 허겁지겁 네이버를 뒤져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게으른 초보엄마는 반성한다.

결론적으로 '태아 딸꾹질은 태아의 호흡기가 발달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일 3-5회 발생할 수 있다.'라고 한다만. 그래도 걱정되니 모레 산부인과에 갈 때 의사 선생님께 여쭤봐야지. 암만 네이버, 유튜브를 뒤져서 정보를 얻어도, 내 맘에 확신의 도장을 찍어주는 건 눈앞의 전문가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깬다. 이렇게 잠을 설친 지 벌써 3-4주쯤 된 것 같다. 원인을 추측해 보자면, 하지불안증과 든든이의 격한 태동, 출산과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집 이사에 대한 신경쓰임 등등이 있겠지. P인 남편은 미리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고 하지만, J인 나는 할 일이 머릿속에 리스트업 되는 순간부터 해결에 대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미리 모색해 두어야 속이 편하다. 백지상태로 마음이 편할 수가 없도록 생겨먹었다. MBTI는 살면서 변할 수 있다지만 나는 영원히 J일 것 같다. 


30주 3일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궁금한 건 그때그때 육아책이나 네이버로 해결해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 시간은 굉장히 짧은 산모였는데. 오늘은 이것저것 꽤 많이 물어본 것 같다.

1. 태아가 딸꾹질을 10분 이상 하는 경우도 있는데 괜찮은가요?

- 의사 선생님 답변 :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크고 있다는 거예요.

2. 한 달 동안 산모는 몸무게가 4킬로가 늘었는데, 태아의 백분위는 65등 ➡️ 55등이 되었어요. 영양분 섭취가 바르지 않다던지, 아가의 성장이 더디다던지, 그런 문제사항이 있을까요?

- 의사 선생님 답변 : 아가의 백분위가 55등이라는 건 평균적으로 아주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산모도 임신 중 10~15킬로 정도 몸무게가 증가하는 것도 정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유가 되시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시는 게 좋아요.

3.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에 대해서 고민 중인데, 혹시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요?

- 의사 선생님 답변 : 무엇이 낫다고 말씀드리기 어렵고 온전히 산모의 선택입니다. 제가 수술 가능한 날짜를 달력에 표시해 뒀으니, 사진 찍어가셔서 고민하시고 다음 내원에 말씀해 주시면 스케줄 잡겠습니다.

4. 조산기가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의사 선생님 답변 : 한 시간에 10회 이상 배뭉침이 반복된다면 언제든 빠르게 응급실을 오셔야 합니다.

5. 기타 상담내용

철분 수치가 낮습니다. 12~16 정도면 정상범위인데 현재 산모는 10으로 수치가 낮은 편입니다. 철분 수치는 태아가 성장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나, 출산 시에 위험도 감소를 위해 미리 신경 써 두는 것입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일정량의 출혈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때에 산모를 위해 철분 수치를 높여두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나는 만성 빈혈+저혈압이 있던 사람이라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그다지 타격이 있지는 않았지만, 요즘따라 부쩍 현기증이 나기도 해서 철분제 양을 늘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뉴트리코어 철분프리미엄은 내가 고른 고용량의 철분제였고, 노페로 캡슐은 오늘 처방받은 철분제이다. 뉴트리코어 철분제도 500mg으로 고용량이었고, 한 달 전쯤부터 두 알씩 복용하고 있었는데- 채혈 검사를 한 게 그보다 더 전이라 복용 효과까지는 오늘 알 수가 없었다 ㅠ 아무튼 노페로 캡슐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라 하시니, 한 달 동안 꾸준히 먹어봐야지! 참고로 약사님이 철분제는 빈속에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고 하셨다!

아가의 실루엣이 변하는 것에 대한 신기함은 임신 초/중기의 기쁨이고, 30주차쯤 되니 아가의 다양한 자세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 초음파를 보러 갔을 때 든든이는 양팔과 한쪽 발을 얼굴 쪽으로 올리고, 한쪽 다리는 앞으로 웅크린 자세였다. 글로 표현하자니 좀 어려운데, 남편이 잘 때의 포즈랑 똑같아서 너무 신기하고 웃겼다. 남편도 잘 때, 한쪽 다리를 세우고 다른 다리를 아빠다리 자세로 올려서 반가자세로 코를 열심히 곤다. 우리 가족의 작은 공통점마저도 너무 사랑스러워 과도한 의미부여+팔불출 엄마의 확대해석 일 수도 있지만 - 누워있는 자세마저도 아빠랑 똑 닮았구나! 싶어서 신기하고 기쁜 초음파 검사시간이었다.

하나 더. 초음파를 봐주는 선생님께서 아가가 벌써 머리숱이 엄청 많다며, 이 정도는 35~36주가 된 수준의 머리숱이라고 하셨다. 입체 초음파에서 본 얼굴도 그렇고 아빠만 쏙 빼닮은 것 같아서 내심 서운했는데 엄마를 닮은 구석도 분명히 있구나-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사랑하는 짝꿍을 닮았다는 사실도 너무 기뻤지만, 나를 닮았다는 사실은 또 다르게 다가오는 기쁨과 뭉클함이었다.


31주 산전우울증

8개월의 임산부는 배가 꽤 무겁다. 어느 날 갑자기 배가 불러온 것도 아니고 8개월에 걸쳐 서서히 배가 커졌는데도, 거울을 보면 문득 볼록한 배가 낯설다. 허리를 숙여 물건을 줍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 내 발톱도 내가 깎기가 힘들어졌다. 여름부터 투명한 붉은빛의 패디큐어가 예뻐서 벗겨질 때마다 혼자 곱게 다시 칠하곤 했는데, 지금은 몇 주째 얼룩덜룩 벗겨진 채 그대로이다. 이렇게 우울한 날엔 관리되지 않은 발톱마저 내 기분을 더 끌어내린다. 몇 번이나 그런 기분을 느꼈으면서도 지우지도 다시 칠하지도 않고 내버려 두는 나를 보며, 신종 자학인가 싶다. 모든 행동이 무거운 배로 인해 불편해진다. 하루 종일 부른 배와 그 안의 태아를 의식하며 지낸다.

생활하는 내내 이렇게 불편했음에도, 바로 누워 자다 보면 어느새 배가 납작해져 버려 임신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깰 때가 있다. 그러면 불러진 배가 그대로 있나- 그 안의 우리 아가는 잘 자고 있나- 배를 문질러보고는, 여전히 그 무거운 배가 맞음을 확인하고 다시 잠에 든다.

뭘까 뭐가 이렇게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드는 걸까. 우울한 기분에 되짚어보면 모든 게 다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 충분한 요소들이었고, 상쾌한 기분에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다시 또 별거 아닌 일로 취급이 된다. 조만간 내가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할 것 같다.


32주 2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산부인과에 갔다. 원래는 오전 중에 검사+진료까지 보기로 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응급수술이 잡히셨다고 오후로 진료가 미뤄졌다.

오늘 초음파에서 든든이는 내 등 쪽을 보고 누워있어서, 우리는 든든이 뒤통수만 열심히 보다가 왔다. 지난번부터 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든든이다. 자꾸 아빠 닮았다고 그래서 삐진 걸까? 호호. 그래도 32주차 든든이는 1.95kg / 42등으로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오늘 진료를 보면서 제왕절개 날짜를 잡았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날짜 중 고민하다가 결국은 몇 년째 재미 삼아 신년운세를 보러 갔던 사주카페에서 날짜를 택일해 갔다. 사실 사주나 운세를 잘 믿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 사주팔자는 영 신경 쓰였다. 거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든든이도 가끔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사주를 보러 다닐 텐데, 그때마다 좋은 얘기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주팔자가 아이 삶을 다르게 만든다기보다는, 불특정 다수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영향력을 내심 생각해 보았던 결정이었다. (더불어 나의 기우도 포함되어 있음을 조금은 인정한다 … 허허)

처음으로 산전마사지를 받았다. 산후조리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포함되어 있어서 예약하고 갔더랬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웬걸. 며칠 끙끙대던 우울감까지 같이 날아간 건 내 기분 탓일까. 마사지를 받고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저절로 풀려버렸다. 허허.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야겠다며 같이 좋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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