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남매는 외할머니 손에 컸다.
큰 아이 낳고 1년 간의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슬금슬금 엄마네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기나긴 기생 육아의 시작.
꼬박 10년간 엄마 옆에 붙어서, 엄마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건사했다.
울엄마의 남매 육아 지분은 약 40%쯤 된다.
내가 30%, 남편이 20%이다.
나머지 10%는 남매의 이모들, 내 동생들이다.
남매는 외가 식구들 품 안에서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다.
복 많은 녀석들.
엄마 아빠가 출근했다 다시 퇴근할 때까지 남매는 외할머니와 지냈다.
특히 태어나 3돌까지는 아직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 보낼 수 없다며 온건히 케어하셨다.
4살이 돼서야 기관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나마도 아침에 최대한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우다가 등원하고 반대로 하원은 정규 과정이 끝나기 무섭게 득달같이 빠져나왔다.
주말에도 일하는 딸내미 피곤할까 싶어 한나절씩은 아이들을 데려가시곤 하셨다.
그야말로 할마.
할머니 엄마.
그 공을 아는 걸까?
아이들은 한 번도 울엄마를 외할머니라 불러본 적 없다.
내할머니라 부른다.
자기 이름을 넣어서 ○○이 할머니 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는 남매 공통으로 우리할머니라 칭하기도 한다.
다행히 아이들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짝사랑은 아니었나 보다.
남매 중에서도 할머니 사랑을 더 오래 받아서였을까.
큰 아이의 외할머니 사랑은 각별하다.
남자 아이라 표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가까이 사는 할머니 댁을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들락거린다.
평소 학교 끝나고 곧바로 향했던 태권도 학원이 끝나면 꼭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아들.
"엄마 끝났어. 걸어가는 중이야. 그리고 오늘 말이야 (이 다음부터는 미주알고주알이 주렁주렁 끝없다.)"
보통 미주알고주알에 들어가는 것들은 알맹이가 없다.
지금 약국 모퉁이를 돌았어.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이 떨어진다.
경찰차가 지나간다.
앞에 신호등이 바뀌었어.
검은 봉다리가 바람에 날아가는데 완전 웃겨.
등 의도치 않게 아이 시선의 CCTV를 생중계 받는다.
난 괜찮단다 아들아.
안물안궁이라고.
( •︠ˍ•︡ )
그렇게 통화하며 집으로 향하던 아이의 발걸음은 무심히 내할머니집으로 향한다.
턴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어느 날은 똥 마려워서.
또 어느 날은 목이 말라서.
다음 날은 배가 너무 고팠고,
어제는 바람이 불어서였다.
오늘은 태권도 끝나고 전화가 걸려올 시간에 조용하더니 잠시 후 사랑둥이 ○○이 아니라 울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할머니네 도착했고, 아이는 폰을 놓고 갔구나 싶었다.
오늘은 또 왜 거기 가 있냐 물으니 '오늘은 다리가 아프지 뭐야.'하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
그리고 그 옆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옷이 얇다.
가방이 왜 이리 무겁냐.
배고프니까 이것 좀 먹어봐라.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절대 싫지 않은 목소리다.
딸년은 지 살기 바쁘다고 바로 옆에 살면서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
다 해놓은 반찬을 가져가라고 해도 안 나타나고, 주말에 밥 한번 먹으러 오라고 해도 낮잠 잔다고 코빼기도 보여주지 않는다.
나쁜 년.
아이들 어릴 때는 찰싹 붙어 엄마 등골을 빼먹더니 이제는 다 키워서 괜찮다고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이다.
그런데 아들을 보자.
매일같이 드나들며 할머니를 보러오니 여간 기특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효도다.
애미보다 나은 녀석.
엄마는 아이가 오는 시간과 날을 기억했다가 맞춤 맞게 아들이 좋아하는 찹쌀꽈배기와 붕어빵을 사다 놓고 기다리신다.
그걸 아는 녀석은 더 뻔질나게 내할머니 집을 드나든다.
오래지 않아 아들에게는 새로운 주말 루틴이 생겨났다.
잠깐씩 머무는 것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캐리어에 짐을 챙겨 1박 가출을 하는 것.
당연히 목적지는 내할머니 집이다.
그곳에서 주말 동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보내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손주를 실컷 데리고 있어도 되니 울엄마도 좋으신가 보다.
오빠를 보내고 집에서 외동놀이를 하던 딸래미가 어떤 날인가 가출 대열에 합류를 했드랬다.
할머니 집 가면 아침부터 고기반찬에, 티브이도 실컷보고, 핸드폰 게임도 할 수 있다는 오빠의 꼬임에 넘어간 것.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이 낄낄 거리며 작당모의를 하더니 각자 짐을 하나씩 꾸려 집을 나섰다.
나야 땡큐지.
손주 키워준 공은 없다던데.
딸년을 보면 그 말이 맞는 말 같다만 아이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이들은 할머니 사랑을 알고 그 품으로 향한다.
포근히 품어주는 할머니 둥지에서 먹고 놀고 오는 것이 휴가라는 아이들.
내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생각했다.
고맙다 아들딸.
그리고 반성도 했다.
스스로 잘하자.
효도는 접어두고 그저 더 자주 얼굴을 보여드리자 싶었다.
남매만 들여보내고 주말을 즐기려던 얇팍한 속내를 슬그머니 접고 아이들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는 좁은 집에 남매 더하기 나까지 자치하고 뒹굴거렸다.
고작 주는 밥 먹고 낮잠이나 잘꺼지만 이렇게 엄마 곁에 있는게 효도라고 덥석 포장해버린다.
정신승리가 아닐 수 없네.
얘들아, 우리 담주에 또올까?
효도하러 와야지.
내할머니 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