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해지리 Apr 16. 2023

MBTI가 I로 시작하는 교사의 새학기

공간의 온도에 민감합니다.




한지쌤~ ♡

  선화쌤~ ♡

    통사쌤~ ♡

      담임쌤~ ♡


복도에서 몇 걸음만 옮겨도 날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무표정하게 걸어다가도 아이들 목소리에 저절로 입꼬리가 상승합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 복도는 한없이 차가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따듯합니다. 

아이들의 온기로 데워졌어요. 


그거 아세요? 

공간의 온도는 사람의 온기로 결정된답니다. 






앞서 근무하던 학교에서 두 번의 휴직과 전출 유예 기간을 갖는 바람에 9년이라는 긴 시간을 머물렀어요. 

익숙해서 편하긴 했는데 한편으로는 권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놈의 학교 빨리 떠야지 !  


하지만 막상 새로운 학교로 발령받고 맞이한 학기 초는 낯섦이 주는 날카로움으로 괴로웠습니다. 

MBTI에서 극강 I로 시작합니다. 

익숙하지 않고, 아는 사람이 없는 환경에 몹시 취약해요. 

반가워서 서로 주고받는 인사와 안부 마저도 그들의 친분을 과시하는 행동으로 보입니다. 

눈 마주치고 인사할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들어버립니다. 

  

수업 시간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아직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과의 수업은 준비된 농담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고, 참 재미없이 수업을 마무리 합니다. 

이러면 수업을 망친 거 같아서 더 시무룩해집니다. 


학기초,

동료교사도, 아이들도 온통 모르는 사람뿐인 복도는 시베리아 벌판 같아요.

차갑고 냉랭합니다. 

걸음을 옮겨봐도 모두 낯설고, 불편합니다.   


그렇게 낯섦으로 점철된 학기 초를 힘들게 통과했습니다. 




 


며칠 전 1학년 10반 교실에 갔더니 내가 수업하는 통합사회 시간표에 특별히 하트가 그려져 있었어요. 

시간표를 구성하는 10개 과목 중 단 두 과목에 하트가 있었답니다. (그걸 굳이 확인했다지요 ㅋ)

내가 수업하는 통합사회(통사) 이외 다른 과목은 우리 학교 최고 비주얼 꽃미남 선생님의 한국사이였어요.

인정 !

아이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는 한국사와 나란히 받은 하트라 더 뿌듯했네요. 


사랑해요 통사 ♡


나도, 나도 사랑해 10반 ♡


진심으로 화답했습니다. 









산야가 서서히 봄단풍으로 물들어 가듯 냉냉하던 이곳에도 안부를 묻고 친분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준 온기로 냉냉했던 복도는 따듯해졌구요. 

 


'선생님, 저 보고 싶었죠~' 하고 달려오는 시아

급식 줄 서서도 멀리 담임이 보이면 팔짝팔짝 뛰면서 인사를 하는 우리반 아이들

날 모르는 친구에게 '우리 한지쌤인데 완전 내가 사랑하자나'라고 소개시켜주는 현민이 까지


이제 복도가 따듯합니다. 

공간의 온도는 사람의 온기로 결정됩니다. 


나또한 누군가의 공간에 사랑의 온기를 채울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목사진출처:픽사베이)

이전 07화 어른의 말과 꼰대의 말, 그 한 끗 차이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