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네 놀이터에서 제일 우악스럽게 소리 지르는 엄마다. 아들의 장난 하나하나에 제동을 거는 잔소리꾼이다. 18년 차 교사 생활에서 얻은 발성으로 기차 화통 같은 잔소리를 발사하면 놀이터 곳곳을 강타한다. 덕분에 놀이터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사실 난 MBTI가 I로 시작한다. 이렇게 집중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 뿜듯 잔소리를 쏟아내는 건 소심한 내향인 엄마 기준에서 아이의 행동이 늘 과해 보이고, 예의 없는 것 같고, 조심성 없이 행동하다 다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이다. (짧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향인이라도 목소리를 클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과 있을 때 피곤하고 낯을 가리는 것일 뿐). 나도 안다. 좀 더 너그럽게 아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엄마 기준에 맞춰 아이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자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참을성 부족하고, 잔소리 심하고, 목청만 크고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한 여자가 교사라는 걸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할지 늘 불안하다. 교사의 표준 이미지와 먼 거리감을 갖고 있는 내 엄마의 민낯. 두 자아의 간격이 비교당할 것이 두려워서 난 남매를 입단속시킨다. '얘들아 제발, 엄마가 교사라고 말하지 말아 주라!'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휴직을 했었다. 유치원 때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왕래가 전혀 없었기에 새로운 인맥 형성을 위해 모성으로 낯가림을 억누르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시작했다. 다행히 초등 1학년 엄마가 처음인 그녀들과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담임쌤 뒷담화 등으로 단톡방을 유지하며 순조롭게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을 무렵. 처음으로 내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고 난 머뭇거리다 교사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때 대답을 들은 그녀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적군의 첩자에게 내부 정보를 모두 내어준 듯한 어이없는 표정. 그동안 학교와 담임쌤 흉을 그렇게 봤는데 왜 그동안 교사라고 말하지 않았냐는 원망의 눈빛.
물어보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점차 말할 타이밍을 놓친 상태였다. 같이 담임쌤 흉보다 말고 난데없이 '사실 나도 교사예요' 라고 커밍아웃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가. 덕분에 난 그들에게 한동안 학부모인 듯, 학부모 아닌, 교사 같은 내가 되어야 했다. 학교에서나 교사이지 집에서,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그저 엄마이고 학부모일 뿐이다. 직업의 이미지가 일상의 나에게까지 씌워지는 건 정말이지 싫다. 그리고 부담스럽다. 난 그냥 엄마다.
만약 누군가 아이들에게 엄마 직업에 대해 물으면 거짓말을 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엄마 직업을 절대 말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먼저' 말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 사람에게는 굳이 미리 가서 '우리 엄마 교사예요' 라고 말할 필요 없다고 신신당부한다. 바로 아이들의 담임선생님. 안타깝게도 부모가 교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왠지공부도 잘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일 듯한 기대감이 생긴다. 큰 아이는 지금까지 4년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장난꾸러기, 개그맨, 덤벙거리고 까부는 아이라는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온 녀석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자신의 이런 이미지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 자녀라는 이미지가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두렵다. '엄마는 교사인데 애는 왜 이모양이야' 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 된다. 엄마의 직업이 교사일 뿐 아이가 집에서 만나는 사람은 그냥 조금 우악스러운 엄마다. 그리고 아이는 그냥 내가 아닌 개별 개체다. 교사 자녀가 아니라.
난 교사라는 직업을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한다. 교무실보다 교실이 좋고, 아이들과 눈 마주치고 수업하는 시간이 정말 보람차고 행복한 사람이다. 교사가 내 천직이라고 믿으며 수업 외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모두 즐겁게 참여한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온 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엄마다. 다듬어지지 않았고 실수도 잦고 항상 거칠다. 아수라 백작 뺨치는 두 자아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둘 다 내 모습인데 교사라는 특정 이미지로만 나와 아이를 평가하는 것이 늘 부담스럽다. 괜히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