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말과 꼰대의 말, 그 한 끗 차이에서
지적과 충고, 잔소리와 조언의 한 끗 차이
어른의 말과 꼰대의 말, 그 한 끗 차이
적절한 순간,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어른의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머뭇거립니다.
지금 하려는 말이 듣기 싫은 지적에 불과한지, 아니면 적절한 충고인지 고민합니다.
쓸데없는 잔소리인지, 유의미한 조언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머뭇거리는 사이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꼰대가 되기 싫어서 입니다.
내 딴에는 걱정이 돼서 건네는 말이지만 듣는 이에게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될까 봐 망설이게 됩니다.
잔소리 안 하고 말을 아끼면서 번지르르한 칭찬만 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진심 없이 오가는 가공된 언어는 공허함을 줍니다.
진실한 관계를 원합니다.
올해는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17살 인생의 배에 함께 올라타게 되었으니 어른의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잔소리 안 하고, 말을 아끼면서 아이들과 웃고 장난면 치면서 지내면 아이들과 적절한 관계는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웃고 떠드는 건 친구입니다.
쓴소리도 하고, 때로는 아픈 말도 건네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꼰대의 말이 아닌 어른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실천해보고 있습니다.
우선 듣습니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말을 줄이고 아이들 말을 듣습니다.
순간순간 '그건 아니지'라는 꼰대의 말이 튀어나옵니다.
미처 혀 끝에서 잡지 못하고 입 밖으로 선보일 때가 종종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참고 듣습니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마음을 열어줍니다.
아이들이 말이 많다는 건 이미 마음이 열렸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듣기만 하고 아껴두었던 내 말을 건네면 그 말은 값어치가 올라갑니다.
속시원히 말들은 내뱉은 아이는 교사의 진심의 한마디를 비워진 속에 채워 넣습니다.
'그랬구나'를 시전 합니다.
무조건 공감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그랬구나'를 넣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합니다.
아이들은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게 세대 차이이구나' 싶지만 고개는 연신 끄덕이고, 입으로는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몸으로 공감을 흉내 내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의 말에 빠져들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그랬구나'를 시전하고 뒤에 공감합니다.
라포 형성을 단단히 합니다.
신뢰 관계 형성이 먼저입니다.
서로를 믿는 믿음이 충분히 쌓이고 나면 담임이 하는 말의 진심을 아이들을 알아챕니다.
'정말 걱정해서 하는 말이구나', '담임의 말은 믿고 따라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믿음을 먼저 심어줍니다.
어쩌면 어른의 말과 꼰대의 말의 한 끗 차이는 둘 사이 관계에 있는 건 아닐까요?
서로 믿고 신뢰하는 사이의 대화인지, 일방적이고 상하관계의 대화인지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칫 감정적으로 말하게 될 것 같을 때는 카톡을 이용합니다.
요즘 아이들 참 솔직합니다.
표현하는 것에 거르낌이 없습니다.
때문에 친구들을 상처 주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교실이라는 공유의 공간에서 자기감정을 거르지 않고 표현합니다.
함께 하는 공간에서 예의 없이 행동해 놓고 자신은 그저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할 것이라고 가벼이 넘겨버립니다.
이런 경우 정말 화가 나지만 감정을 넣으면 어른의 말이 잔소리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에 우선 메시지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감정을 걷어내고 드라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행동을 조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오늘도 고민합니다.
마음속 수많은 말들 중 거르고 골라 가장 중요한 말만 남깁니다.
주절주절 길게 늘어놓기보다 진심 어린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감정을 빼고 건조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어른의 말을 고민하며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