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15일 '스승의 날'이 월요일이네요 ㅠ
2021년, 2022년 모두 스승의 날이 주말이었습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올해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스승의 날을 스킵할 수는 없을까요?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어색한 하루를 버텨야 할 것 같아요.
보통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은 의무감 + 준비하는 재미 + 순수한 마음을 담아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칠판 한가득 형용색색 분필을 써서 감사와 축하 메시지를 적습니다.
아침 조회를 들어가서 저는 흠칫 놀라며(놀라는 척하며) 하나하나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겁니다.
코끝이 찡하게 고마운 마음과 쑥스러움이 혼재되어 고마움을 어색하게 표현하겠죠?
수줍게 다가와 손 편지를 전해주는 아이들과는 눈인사를 나누고 교무실에 가서 혼자 흐뭇하게 읽을 겁니다.
혹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김칫국 드링킹하는 걸까요?
제가 이래 봬도 교사 생활 19년 차랍니다.
그리고 제법 아이들과 단단한 래포를 형성하며 해마다 즐겁게 학급을 운영합니다.
이 정도 신뢰(칠판 가득 메시지와 손 편지 정도는.. 기대하게 되는)는 갖고 있어요.
이렇게 스승의 날은 제법 즐거운 축제의 날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이 불편합니다.
자격이 없는데 아이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받으려니 아주 가시방석입니다.
이제 만난 지 두 달 남짓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제가 뭘 얼마나 했겠어요.
그저 아이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좀 심하게 퍼분 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진다고 하니 세상 부담스럽습니다. ( • ̯• )
좀 더 솔직해볼게요.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진짜 '스승'이 될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전 스승이라 불릴 만큼 훌륭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적당히 제 역할에 충실하며 아이들과 잘 지내는 보통의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이고 싶어요.
교실에 32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적절한 선을 유지하지 않고 제 온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집중하다보다 어느새 제 개인의 삶은 없어집니다.
(이미 해본 자의 허탈함)
그리고 제한 없이 에너지를 쏟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에게 그만큼의 피드백을 기대하게 되더군요.
감정이 일방통행인 스토커처럼 혼자 애정을 쏟아놓고 반응이 없으면 혼자 폭발하기도 합니다. ( •︠ˍ•︡ )
(얘들아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너희들 반응은 이게 다니?)
게다가 초반에 에너지를 쏟아내고 학기말에는 에너지 고갈로 용두사미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경험을 통해 뭐든 과유불급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적절한 선을 지키며 학급을 운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절대 스승이라고 할 만큼 영혼을 갈아 넣는 모습은 없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 이라는 이벤트날이 부담이 됩니다.
한켠 스승의 날이 기다려지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날은 졸업한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거든요.
대학생 되고, 또는 사회인이 되어서 다들 바쁘게 살다가 날이 날인지라 아이들이 이날 만큼은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카톡으로 소식을 전해오기도 합니다.
덕분에 궁금했던 아이들의 근황도 듣고 다른 친구들 소식도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그때 고마웠다는 말이라도 듣게 되면 어깨가 한껏 우쭐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스승의 날을 스킵하는 건 안될 것 같습니다.
궁금하고 그리운 아이들 소식이 기다리지거든요.
부담스러운 마음은 누르고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추억을 남기는 날이 되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즐기며 지나가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 마음이 고마우니깐요. ˘◡˘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