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물어다 준 행운의 박씨
인사잘하는 교사에게 주어진 세 개의 박씨
아이들에게 인사를 중요하게 가르친다.
학급 아이들에게도 가장 강조하는 것중 하나가 수업 시작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밝게 인사하자는 것이다.
인사는 당연한 행동이지만 예상보다 큰 힘이있다.
때로는 들이는 수고에 비해 로또급 박씨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첫번째 박씨는 교사 임용 전 신규연수에 참석했다가 얻게 되었다.
연수 초반 오후에 이름만 나이스한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강의 시간이었다.
강사는 자신을 '◇◇대학교 지리교육과 ○○ 학번 교사 ♧♧♧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굳이 대단하지 않은 출신 대학을 자기소개에 포함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보다 뜬금없이 같은 학교라는 학연이 반가웠었다.
어, 우리 학교 선배님이시네
전날 숙취로 인해 맨 뒷자리에서 연수를 듣던 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 수많은 연수자들을 거슬러 올라가 강사 님께 납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대학교 지리교육과 00학년 아무개입니다
원래 내 성격은 MBTI에서 극 I에 가까운 편이다.
그런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앞에 나가 인사를 하는 돌발행동을 왜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임용고사 합격의 기쁨과 전날 숙취의 콜라보가 빚어낸 예기치 못한 언행이었다.
암튼 서로 뻘쭘했던 그날의 인사는 곧바로 내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연수 마지막날 나의 첫 학교가 발표되었다.
강원도 원주의 지역이름을 붙인 명문여고였다. (분명 학교 이름을 안 썼는데 다 쓴 기분이 든다 ㅋ)
선발집단이었고 여학생만 모인 곳이라 초짜 교사에게 이보다 감사한 학교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신규들이 꽂힌다는 험준한 태백산맥 한복판이나 또는 그 넘어 동해안이 아닌 도시로 발령받은 행운에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렇게 원하던 곳에 발령받아 제법 교사다워졌던 3년 차의 어느 날, 복학 후 교육 실습을 받고 있던 동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기) 너, ♧♧♧ 선생님 알아?
(나) 몰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동기) 이 선생님은 널 알던데. 원주여고 근무하는 ◇◇◇이 동기냐고 묻던데?
(나) 뭐야, 소름. 누군데?
(동기) 이 선생님이 널 원주여고에 넣어준 거래. 너 신규 연수 할 때 인사했다며
(나).......
아~ 그때.
어! 인사한 적 있어. 뜬금 왜 그랬나 몰라. 근데 갑자기 내가 후배라고 인사하고 싶었어. 우리 학교 선배라 반가웠나 봐. 근데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셔?
(동기) 그분이 당시 도(道) 인사 담당이셨대. 신규 발령자 명단을 검토하고 있는데 니 이름이 원주농고에 있더라는 거야. 여교사가 농고가서 힘들겠다 싶어서 본인이 원주여고로 바꿔놓으셨다네.
헐!
그해 강원도 지리교과 임용고사 합격자는 단 3명이었다.
그중 난 2등이었다.
규정상 현직 교사들의 이동이 마무리되고 빈자리에 신규교사가 꽂힌다.
그리고 관례상 성적순으로 원하는 지역, 좋은 학교에 배정하게 된다.
신규교사가 3명뿐이라 연수 기간 내내 셋은 같은 수업을 들어서 안면이 있던 터였다.
그리고 1등을 한 남자 선생님은 나와 같이 원주는 1 지망으로 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원래 내가 갔어야 했던) 원주농고에, 나는 (그가 왔어야 했던) 원주여고에 발령이 나서 의아하긴 했었다.
헌데 3년만에 이런 내막을 알게 된 것이다.
1등을 하고도 원주농고에 발령받은 그분은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부적응 내신을 내고 이미 학교를 한번 옮긴 후였다.
그가 고생한 2년의 시간이 어쩌면 내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아주 짧은 부채감이 찾아왔다가, 돌발 인사가 전해준 행운의 박씨가 이렇게 운명을 바꿔놨다는 것에 대해 놀라 돋아난 닭살들을 다독이며 안도의 한숨의 쉬었다.
그렇게 돌발인사 덕분에 발령받은 첫 학교에서 맞이한 3번째 겨울 방학에 새로운 박씨를 받게 되었다.
지역 명문고답게(?) 방학에도 정규 학기만큼의 보충수업을 강제로 진행하던 학교였다.
4주간의 빡쎈 보충수업을 끝내고 남은 방학을 본가에서 보내고자 짐을 챙겨 출근을 했었다.
드디어 마지막 수업을 마쳤지만 시외버스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던 터라 1층 본 교무실에 들러 선생님들께 방학 잘 보내시라고 인사를 하러 갔다.
마침 학교를 지키고 계시던 교감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나섰는데 등 뒤에서 교감선생님의 외침이 날 멈춰세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잰걸음으로 교무실로 컴백하니 교감선생님이 문서 한 장을 내미셨다.
◇◇◇선생님, 금강산 갈래요?
네?
갑자기 교육청에서 학교당 3명씩 금강산 연수를 보내주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확인이 늦어서 처리 기한이 임박했다는 설명.
갈만한 분들게 전화를 돌려봤지만 방학이라 통화가 안되었고 인원을 못 채우고 발송할까 하던 참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당시 학교 유일의 20대 교사(=막내), 공적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절대 내가 낄 수 있던 자리가 아닌데 인사를 한 덕에 운 좋게 문서에 내 이름을 박아 공문이 발송되었다.
그렇게 인사 한번 한 덕분에 육로를 통해 북한에 들어가 눈 덮인 금강산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평양 옥류관 주방장이 직접 파견나와 만들었다는 평양 냉면을 맛보기도 했다.
(이 썰은 아직도 북한 지역에 대해 설명할 때가 되면 사골처럼 우려먹는 내 레파토리가 되었다.)
얼마전 복원한 싸이월드 사진첩에 있던 옥류관 김치 사진, 김치 사진은 있고 냉명 사진이 없다는 게 미스테리다.
인사가 물어다 준 박씨는 아직도 남았다.
시간이 한참 흘러 두 번째 학교에서도 이동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내신을 낼 때에는 교사는 TO가 있는 학교를 직접 알아봐야 한다.
보통 고등학교에는 지리교사가 하나 또는 둘 정도 뿐이라 빈자리가 있는 학교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관내 모든 학교에 지리 TO가 있는지 전화로 확인해서 겨우 1, 2, 3 순위 학교를 정하고 내신서를 제출했었다.
마무리되고 나니 갑자기 작년까지 같이 근무하시다가 다른 학교로 전출 가신 부장님이 생각이 났다.
곧바로 안부전화를 드렸다.
부장님 잘 지내시죠?
저도 이번에 내신 냈어요.
작년이 좋았았어요.
우리 팀 연말에 뭉쳐요.
조잘조잘 인사를 건네는데 부장님은 급하게 내 말을 끊고 어느 학교로 내신을 냈느냐 물으셨다.
내신서에 적어낸 1, 2, 3 순위 학교를 말씀드리자 5분 있다 다시 전화를 주시겠다며 다급하게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금세 다시 걸려온 전화에는 특급 박씨가 딸려왔다.
♧♧고에 자리가 있으니 내신서 수정해요.
쌤 집에서도 가까운 곳이 자나.
그분이 내신을 내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어제 맘을 바꾸셔서 그 학교에서 당황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네. 어제는 미처 쌤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마침 전화를 줘서 퍼득 생각이 났네. 확인해 보니 맞다네. 이 소식을 아는 분들이 거의 없어서 아마 경쟁 없이 이동할 수 있을거예요.
홀레이!
순수했던 내 안부 인사는 또 다시 집에서 가깝고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난 희미한 로또에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사를 하면서 매번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는 것은 별다른 수고로 없고, 어렵지 않은 일이라 매양 그렇게 지내왔던 거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의 인사는 종종 뜻하지는 않았지만 행운의 박씨가 되어 되돌아왔다.
당신에게도 마음을 담은 인사를 해보자고 권해본다.
내일의 인사가 뜻하지 않게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