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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Dec 05. 2023

산타 할아버지가 쿠팡을 해?

동심 지키기 대작전



크리스마스 아침.

아기다리고 고리다리던 선물을 뜯어보며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한 풍경이어야 하는데.

저 표정 모람.

떨떠름한 표정의 아들이 질문을 던졌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쿠팡을 해?


순발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데, 내겐 늘 없다.

애미 얼음.

눈빛으로 애비에게 대답을 종용했으나 애비도 얼음.

땡 해줄 사람이 없다.  

졌나 싶었다.



그시절 슬금슬금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이 키우던 아들이다.

사실 늦됐다.

이미 3학년인데 철석같이 산타를 믿는 것도 이상하다.

원래 '산타는 허구'라는 식의 고급 정보는 언니오빠누나형아가 있는 친구들로부터 속닥속닥 주워듣고 화들짝 놀라며 동심을 파괴당해야 하는 건데 그 시절은 그럴 기회가 적었다.

아이 9살에 코로나 창궐했고 그렇게 2학년과 3학년을 징검다리 건너듯 덤벙덤벙 학교를 갔었다.

또래와 교류가 적었으니 유입되는 정보가 부족했을 터.

그럼에도 외부 도움 없이 독학으로 산타는 없는 것 같다는 기특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 아들.

산타가 혼자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모두 선물을 주는 것이 이상하다며 눈을 째리더니, 루돌프는 사슴인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기까지 한다.

녀석 제법이다.

그러면서도 이미 10년이나 간직했던 믿음이 제법 견고했던 건지 한 번에 깨지 못하고 의심과 신뢰가 뒤엉켜 혼란 그 잡채 상황.

혼돈의 빠진 모습이 귀여서, 동심을 조금 더 지켜주고 싶어서 산타는 사실이라고 욱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아들의 불신을 확고히 할 증거품을 들키고 말았다.

팬트리에 대놓고 숨겨두었던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푸드코트의 상자를 아들이 찾아낸 것.   


(아들) 이거 봐. 이거 봐. 선물이 쿠팡으로 왔네.
배송도 엄마 이름이잖아.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고


예상치 못한 아들의 공격에 우리 부부는 말문이 막혀서는 우물쭈물이다.

그러다 겨우 남편이 한마디 했다.


(아빠)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전 세계 아이들 선물을 다 돌려.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심부름시키시는 거지.
그걸 쿠팡으로 받은 거뿐이야.


(아들) 산타 할아버지도 쿠팡 해?


(아빠) 그럼. 쿠팡은 다들 하지.
 


그게 말이냐 방구냐 싶었는데 의외로 갸우뚱하며 반박이 없는 아들.

그렇다고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을 때 예상 밖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선물에 집중하고 있던 딸아이가 만족스러운 메인 선물 외 작은 선물 포장을 뜯어낸 것.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아들) 동생, 그 사탕 어디서 났어?  엄마가 준거야?
(딸) 아니, 선물에 들어있었어. 내 선물에
(아들) 엄마 왜 나는 사탕 안 줘.
(엄마) 뭔 사탕?
(아들) 선물에 사탕이 한 개뿐이야. 왜 내 거는 없냐고
(엄마) 그걸 어떻게 알아. 산타할아버지가 넣어준 것을.


딸아이가 뜯었던 작은 선물은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였고, 참으로 지루한 거리두기의 시절이었다.

어디든 실내에는 사람이 모이기 어렵던 시기.

그래서 종종 방문하던 실내어린이놀이터에서 집에만 있는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해 줬던 거다.  

딸아이는 아직 어려서 선물 대상이었고, 큰 아이는 제외

그렇게 받아온 선물을 살펴보지 않고 포장해서 산타 선물인양 트리 밑에 다른 선물과 함께 두었었다.

그 안에 장난감 하나 + 막대사탕 하나가 들어있던 모양이다.

이때다 싶었다.

 

(엄마) 아들아, 거봐. 그거 산타 선물이라니깐. 
엄마가 선물을 준비했으면 그 안에 사탕을 한 개만 넣었겠어.
너네 싸울게 뻔한데.
당연히 두 개 넣었겠지.


(아들, 정말 깜짝 놀란 표정으로)
헐,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준 거구나.


어라, 이렇게 쉽게 설득이 된다고?

좀 전까지 산타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던 녀석이 곧바로 '산타'가 아닌 '산타 할아버지'라고 존칭 하는 것도 웃기고, 어설픈 핑계에 홀딱 속아주는 것도 귀엽다.

그렇게 아들은 10살까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으며 행복한 그 시절을 보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아들은 이제 산타클로스 컴인 두 카운이 되면 산타 대행 아줌마에게 충성을 한다.

♪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애미가 눈을 부릅뜨고 매일매일 지켜보신대) ♭

선물의 출처를 명확히 아는 것은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착실히 착한 일 공덕을 쌓아야만 착한 어린이에게 제공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덕분에 산타 대행 아줌마는 이 기간이 즐겁다.

착한 아이 마일리지를 위해 뭐든 척척척이다. 

공부도 알아서 척척척

자기 방 정리도 알아서 척척척

종종 엄마 대신 동생과 놀아주는 서비스도 척척척 해내니 재능어린이가 따로없다. 



견고하던 동심은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깨진다.

어린아이를 감싸고 있던 보호막을 사라지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라는 신호일터.

동심을 부스고 자라나는 아이를 아쉬워하기보다 건강히 자라고 있음에 안도한다.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서 당당히 독립하길.

그땐 나도 좀 편하게 살겠지? ㅋㅋㅋ

 


그럼에도 남은 걱정은 이 글을 딸아이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는 아이에게 이 글은 숨겨야겠다.  




(제목사진:픽사베이)


딸아이는 엄마의 브런치 글을 매일 읽어주는 열혈 독자입니다.

고맙게도 엄마 글이 재미있다고 합니다.

본인들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어서 더욱 그런 모양입니다.

문제는 이 글을 읽으면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딸의 동심이 바사삭 부서질 것이 두렵네요. 

이 글은 어찌 되었든 잘 숨겨보겠습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미리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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