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가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네잎클로버를 찾으려는 것이다.
세잎들 사이에 숨어있는, 혹은 존재하지 않을 돌연변이를 찾고자 분주히 안구 운동을 해본다.
하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
한 번도 네잎클로버를 발견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클로버만 보면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브의 개처럼 길바닥에 주저앉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손예진도 아닌데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 있는가 보다.
그녀는 예쁘기라도 하지.
( •́ ̯• )
별것이 되고 싶다.
흔한 세잎클로버보다는 모두가 찾아 헤매는 네잎클로버가 되고 싶다.
퍼스널 브랜딩을 해보겠다며 낮엔 일하고 밤엔 잠을 쪼개가며 블로그도 운영하고 브런치에도 글을 쓰며 질질질 끌고 온 지난 1년.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뒤져도 내 눈에만 띄지 않는 네잎 클로버처럼 퍼스널 브랜딩도 찾아 헤매기만 하다가 끝날 것 같아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덧 자라서 이제는 엄마의 손길 없이도 제법 자기 앞가림을 한다.
수년간 공들인 덕분에 공부도 루틴대로 해낸다.
한결같은 남편은 늘 묵묵하게 자기 몫을 하고 생색하는 법이 없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학교 안에서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다 걱정하지만 교사로서의 삶도 무탈하기만 하다.
만듦새가 잘 짜여진 톱니바퀴 일상이다.
그럼 감사해야 하는 건데 내겐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결여된 모양이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에 시비를 걸고 있었다.
평온한 일상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여기고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내 스스로를 내 삶의 빌런으로 살고 있었다.
당연함이 되어버린 일상이 조금만 삐끗해도 크게 짜증을 냈고, 잘 굴러가는 하루를 무료하다 여기며 그저 새로운 것을 찾아 기웃거리고 있었다.
내게만 보이지도 않는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뉘우침이 찾아왔다.
멘토의 한마디 덕분이다.
내 곁에서 건강하게 함께해 주는 가족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말씀을 듣고 아차 싶었다.
네잎클로버 찾겠다고 밀쳐내기만 했던 세잎 클로버의 소중함을 무시하지 살았던 거다.
후회막심.
나를 발견하겠다고 발버둥 칠 수 있는 것도 내 가족들이 건강하기 때문.
사소한 일상의 고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감사한 일인데 오히려 그것을 심심하다고 치부하는 어리석음을 행하고 있었다.
생각을 바꿔먹었다.
덕분에 오늘은 행복이 MAX로 차올랐다.
여느 일요일과 다르지 않았던 오늘.
찜질방, 런닝맨, 짜파구리가 있는 평범한 휴일이었다.
종종 일요일에 딸아이와 찜질방 데이트를 즐긴다.
엄마는 한증막에서 일주일의 묵은 피로를 날리고 아이는 냉탕에서 어푸어푸를 즐긴다.
그리고는 촐촐해진 배를 부여잡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재미있는 거 보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런닝맨을 보면서 짜라짜라짜 ♬ 짜파구리를 먹는 건 우리집 남매의 일요일 저녁 루틴이다.
매주 반복되던 일상인데 맘을 고쳐먹은 오늘은 특별히 좋았다.
쉽고 간편한 메뉴로 저녁을 해결해서 즐겁고, 저녁 시간 내내 다 같이 깔깔깔 웃을 수 있어 행복했다.
매주 같은 시간에 먹던 짜파게티가 이리도 큰 행복이었음을 이제사 느껴 억울할 지경.
짜파구리에는 소고기, 국룰이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미난 거 보는 아이들
행복은 별것이다.
드물고, 이상스럽다.
세잎클로버처럼 흔한데 네잎클로버처럼 보이지 않는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행복이다.
세상에 이유 없이 마땅한 것은 없음을 새삼 아로새긴다.
더 늦지 않게 내 곁에 행복을 붙잡을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는 멘토가 있어 다행이다.
무엇이든 공감해주며 함께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나의 그녀들이 있어서 참으로 든든하다.
엄마의 도전을, 아내의 수고를 묵묵함으로 응원해주는 나의 전부, 가족들이 건강함에 감사한다.
그렇게 오늘, 짜파구리의 한그릇에 행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