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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수상한 이중생활

글쓰기를 들켰다

by 행복해지리



글을 발행하면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나는 이 글이 어디에 가 닿길 바라며 쓰는 걸까?

세상을 향해 발행했으니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알지만 주소 없이 보내진 글이었기에 받은 이로부터 답은 기대하지 않은 터였다.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시원하게 뱉어낸 외침 같은 글들이다.

그저 메아리 정도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르는 소리다.

그렇게 허공이라 생각하고 보내진 울림에 또렷한 응답이 오니 당황스러웠다.

몰래 숨어 한건 아니지만 뭔가 들킨 것 같고, 잘못이 없는데도 찔렸다.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과 급식을 먹고 있던 보통의 순간이었다.


"선생님 블로그하더라"


백사장 수백만 모래알 속에서 내 모래를 찾고 알아본 것이다.

그녀는 발견의 기쁨에 화답을 원했는데 당황해서 적절한 대답을 건네지 못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지만 티 내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하며 연신 국만 퍼올렸다.

그러면서 찰나를 틈타 최근 올린 글 목록을 떠올려본다.

다행히 블로그는 초등교육 관련 정보성 글만 올리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될 터였다.


하지만 링크로 연결시켜놓은 브런치스토리가 문제였다.

브런치에 올린 갬성 가득 글들을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이 읽던 블로그 주인이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추리 과정을 말하는 그녀는 신이나 있었다.

하지만 난 리액션 오류에 빠져있었다.

다른 분들까지 당장 블로그를 찾아보겠다고 나설까 잔뜩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때 새롭게 자리에 합류하는 다른이 덕분에 빠르게 화제가 재편되었다.


한도의 한숨을 뱉었다.



블로그를 틀킨 것에 긴장한 것은 단지 개인적인 글이 드러난 불편함 때문은 아니다.

조금 낯부끄럽긴 했지만 그런 걸로 문제를 삼을 분도 아니기에 그 이유는 미미했다.


그저 꾀나 시간 여유가 있어서 외도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고, 글쓰기에 진심인 마음이 가볍게 비칠까 우려됐다.

밤잠을 줄여서 만들어낸 틈에 겨우 글을 짓는 중이다.

글을 쓰는 요즘, 마흔이 넘어서야 내 속을 공들여 들여다보게 되었다.

형체가 없는 듯 아리송한 마음을 다독여 글로 빗어놓으면 더없이 개운하다.

감정을 글로 배출하면서 느끼는 시원함에 빠져 피곤함을 버티며 글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디서 시간이 나 블로그를 하냐'는 질문에 선 듯 대답하지 못했다.

글쓰기에 궁서체인 마음을 풀어놓기에 시끄럽고 어수선한 급식실은 적절하지 않았다.

또한 글쓰기는 내가 오래동안 품고 있던 출판이라는 꿈과 닿아있었기에 소중히 품고 있고 싶었다.

언젠가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그런 날, 좋은 곳에서는 편하게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글 짓는 실력이 부끄러운 탓이다.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럽거나 나무랄 데 없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다.

아직은 덜 여문 실력이라 겸연쩍어서 그 순간 긴장했으리라.





이 글도 언젠가 보시려나.

고백같은 글을 남겨본다.




(제목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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