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시간.
주말을 독박 육아로 살벌하게 보내고 온 그녀의 넋두리가 시작이었다.
시킨이가 없는데 자연스레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남편 흉보기 배틀전이 되었다.
아구, 우리 집은 한술 더 떠.
난 지난번에 시댁에서 어땠는지 알아?
아니 일은 자기만 하나? 허, 참!
결혼 지옥에 출연해도 될만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는 그녀들.
우걱우걱 밥을 씹으며 남편들이 하나씩 잘근잘근 씹혀나갔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내게 시선이 모아졌다.
이젠 니 차례다.
난 순진한 척 눈만 꿈벅여보였다.
응?
뭐?
나도 같이 씹자고?
미안, 난 남편이랑 친해.
대학교 신입생으로 만나서 10년 연애하고 결혼했다.
올해로 12년 차 부부니깐 22년 정도 붙어있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 부부가 큰 소리 내고 싸운 일은 두어 번(모두 신생아 육아로 초초 예민할 때였다.), 헤어짐의 위기는 연애 시절 한번(스토리가 길어서 생략) 있었다.
남편은 다정다감하며 살림도 잘하는 전형적인 애처가 스타일은 아니다.
먼저 퇴근하면 침대에서 자고 있고, 저녁을 먹으면 성실하게 게임하는 사람이다.
양말은 항시 각각 따로따로 아무 곳에 던지며, 손톱을 깎으면 모아서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방치한다.
남매를 재우려고 안방에서 불 끄고 있을 때 건넌방에서 유튜브 보면서 박장대소하는 통에 욕 나오게 하는 그런 유형이다.
하지만 싸움은 없다.
자빠져 자고 있는 게 꼴보기 싫으니 깨우면 된다.
저녁 먹자마자 게임을 하면 설거지하고 빨래 개키라고 지시하면 그만이다.
유튜브 보며 깔깔대는 통에 아이들이 잠을 안 자면 악을 쓰고 '조용히 해' 하고 소리친다.
남편은 그저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내가 하겠다고 한다.
그는 잔소리를 앞서지는 못하지만 행동으로 잔소리를 상쇄시킬 줄 안다.
저녁 식사가 끝나도 우리 부부는 식탁에 남아 있다.
친분을 나누는 시간이다.
같은 직종, 같은 전공이라 공감대가 많은 우리다.
낮에 일터에서 있었던 빡침 포인트를 늘어놓으며 격공이 오간다.
큰 아이, 작은 아이의 소소한 일상과 교육 고민을 나누는 것도 이때다.
요즘은 대화거리가 하나 더 늘었는데 그것은 내 글쓰기다.
남들에게는 멋쩍어서 내보이지 못하는 글을 남편에게는 내밀 수 있다.
그는 한결같이 내 글을 진지하게 읽고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는 맘 상하지 않게 적절한 피드백을 해주니 내게는 든든한 독자이자 코치가 남편이다.
우리는 대화가 많다.
끝까지 붙어있다가 이렇게 늙어보자 남편아.
22년이 되었으니 찐찐한 애정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더 친해지고 있다.
그는 내 찐친이고, 내 사랑이고, 내 남편이다.
우린 많이 친한 부부다.
사진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