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의 경계는 때론 무력하다.
경계가 무너지고 훼손되는 것은 정의를 자기 뜻대로 우그러트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이 보통 공동선을 무시하고 오직 개인선의 입장에서 자기가 옳다 주장한다.
논리는 빈약하고 설득력이 없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어린아이 떼쓰듯 고집을 부린다.
개울물을 흐리는 건 미꾸라지 한 마리면 족하니, 오늘 그 미꾸라지를 만났다.
아이들과 느지막이 가까운 계곡을 찾았다.
한참 뜨거운 시기는 지난 터라 아침부터 놀던 사람들이 빠져나가 자리 잡기 수월했다.
한가롭게 조카와 남매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이들 곁으로 돌 하나가 떨어졌다.
둘러보니 옆에 앉은 아들 또래 아이가 물수제비를 만들려고 돌을 모아놓고 던지고 있었다.
조용히 아이에게 일러줬다.
사람들이 놀고 있으니 그 방향으로 돌을 던지면 위험할 것 같아. 던지지 말아죠.
아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고맙다고 화답했다.
내 말이 위협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마지막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분명 그 옆에 애 엄마와 이모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은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놓고 자기 아이를 주의시키는 말이 고까웠는지 삐죽거리는 입모양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못 본 척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흘렀는데 아들 옆으로 또 돌이 날아들었다.
거의 맞을 뻔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또 그 아이 일행이었다.
이번엔 그 아이 이모로 보이는 사람이 던진 것이다.
그리고는 아이 엄마에게 '어머 맞을 뻔했어.'라고 말하고는 웃는 것이 아닌가.
저기요. 지금 아이가 돌에 맞을 뻔했어요.
일부러 던진 건 아니고 맞지는 않았어요.
사과 대신 헛소리가 날아왔다.
이모로 보인 여자의 말이었다.
맞았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거기에 돌을 던지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내 아이가 돌에 맞을 뻔했으니 나 또한 화가 잔뜩 나 높아지려는 언성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헌데 다시 돌아온 말이 가관이다.
맞을 뻔 한건 맞는데 돌은 안 던졌어요.
WHAT?
이번엔 던진 사람이 아닌 아이 엄마의 대꾸였다.
상황 인지를 잘못한 건지, 아까 자기 아이에게 꾸중한 것에 꿍하고 있다가 섞어서 내뱉는 것인지 엉뚱한 말을 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니 돌을 던진 사람이 뒤에서 아이 엄마를 제지했다.
'내가 던졌어. 맞을 줄 모르고 던졌는데 맞을 뻔했다. 내가 던졌다고. '
그럼에도 상관없다는 듯 말류 하려고 잡아끄는 팔을 뿌리치고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맞을 뻔했지만 돌은 안 던졌다고요.
돌이 날아가 맞을 뻔했지만 돌은 안 던졌단다.
헛웃음이 난다.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만일 일이다.
안 맞았는데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냐고 오히려 적반하장 하는 꼴이 참기 힘들었다.
혹시 앞서 아이가 한 행동이 없었다면, 아이가 빠진 상황이라면 인정이 쉬울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앞서 아이를 꾸중한 것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때다 싶어 악다구니로 화답하는 걸까.
돌 던진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아까 아이의 행동도 잘못된 것이 될까 봐 억지를 부리는 걸까.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향으로 돌을 던진 행동이 위험할 거라 예측하지 못한 바보같은 판단력을 인정하기 싫은 걸까.
아니면 정말 이 모든 게 왜 문제가 되는지 판단이 안 되는 사람들인가.
나와 그녀들의 말 사이에 그 집 아이가 앉아 있다.
내가 던지는 말과 그녀들이 던지는 말 사이에 앉아 있던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가는 말이 언성이 높아지니 놀고 있던 남매가 내 쪽으로 몰려왔다.
목소리가 큰 아들이 '엄마 무슨 일이야? '하고 소리치자 점차 주변 시선도 모여들었다.
공격의 타이밍이다.
애들 노는 데다가 돌을 던져놓고 맞을 뻔 한 건 맞는데 돌은 안 던졌다는 대체 무슨 논리인가요?
변명이 궁색해진 그들이 쭈뼛거렸다.
그런데 하필 배달시킨 치킨집 사장님 전화가 왔다.
사람 많은 곳이라 도착 전화를 꼭 좀 받아달라고 신신당부하신 통에 전화를 받고 자리를 비웠다.
상황은 이렇게 허무하게 종료됐다.
(우리 아이들 곁에는 내 동생이 있어서 몰놀이 하는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치킨을 받아서 돌아와 보니 그들은 재빨리 짐을 정리해 사라졌다.
자리에는 던지려고 모아둔 돌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어렵지 않다.
유치원 졸업할 나이만 돼도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판별할 수 있다.
부모란 옳고 그름의 판단을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행동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이다.
일부지만 옮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내 아이 감정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의 감정은 읽어주고 공감하되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알려주고 바로 잡아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만 망각하는 것이다.
그게 그리 어렵니?
조건 없이 편들어주는 것이 과연 아이를 보호하는 것인가?
그렇게 나만 아는 아이로 키우면 아이는 세상 속에 나아가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레 섞여 행복할 수 있을까?
물수제비를 던지기 전 그 아이는 내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모두들 계곡물에 빠져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엄마와도 이모와도 대화 없이 그저 무표정으로 핸드폰만 하던 아이.
내가 본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순간만은 표정없는 얼굴에 행복도 없었다.
사람들을 향해 돌 던지는 아이 말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다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