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낯선 꽃을 만났다.
크기는 아이들 주먹만 하게 시원시원하고 꽃잎이 넓고 화려한 주황색을 해서 눈에 확 들어오는 꽃이었다.
여태 왜 이런 꽃은 몰랐을까?
나팔 모양을 하고 있는 꽃이 초록색 잎들과 어울려 한여름 쨍하게 시선을 끌었다.
이런 꽃을 처음 봤다고 했더니 함께 걷던 지인이 무척 흔하게 봤을 거라며 주변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달리다 보면 보일 거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고 그녀는 말을 아꼈다.
오늘 수수께기를 풀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평소 운전하면 그저 앞만 보고 달리지만 오늘은 운전대를 잡지 않아 비 오는 창밖 풍경을 살피는 여유가 있었다.
비 때문인지 운전하던 남편 갬성이 살아나 회색빛 방음벽을 초록초록하게 덮어주는 덩굴에 관심을 보였고 자연스레 덩굴 식물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본래 회색 방음벽이라는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고 있는 덩굴들을 보며 푸름이 주는 풍성함의 고마움을 이야기하던 그때 초록초록 하지 않은 주황주황한 것들이 지나갔다.
지금까지 보던 담쟁이 덩굴과는 다른 것이었다.
하필 여적 차가 막혀서 거북이처럼 움직이던 흐름이 풀리면서 더 관찰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담쟁이가 아닌 저 주황색이 뭘까?
예술의 전당에 들러 아이들이 보고 싶던 '백희나 그림전'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방음벽만 봤다.
그렇게 벽을 노려보다가 다시 주황주황 무리를 만났을 수 있었다.
회색빛 딱딱한 방음벽을 타고 올라와 빼꼼 고개를 내민 주황색은 능소화였다.
이래서 얼마 전 지인이 달리면서 볼 수 있다는 수수께끼를 냈는가 보다.
십수 년을 운전하며 반복해서 지나온 길인데 이제야 보았다.
어느 시인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했는데, 난 오래도록 보고도 몰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자세히 볼 겨를 없이 매일 바쁘게만 살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곁에 오래 두고도 볼 줄 몰라서 알지 못했다.
너도 그렇다. 능소화야 이제는 곁에 있는 너를 오래 두고 자세히 볼게.
(풀꽃, 나태주)
능소화를 일찍부터 알았더라면 그동안 쓸쓸했던 고속도로가 달라졌을까 싶다.
담을 타고 올라와 빼꼼 내민 능소화를 발견하는 기쁨, 봄이 지나 여름이 돼서 활짝 피어날 능소화를 기다리는 설렘, 내년을 기약하며 떨어진 주황색 꽃을 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나는 또 무엇을 놓치며 살았을까?
어쩌면 이미 얻었음에도 소중함을 모르고 도로 잃은 것도 있으리라.
찬찬히 살피며 살자고 다짐해본다.
능소화처럼 대강보아 넘겨서 놓치며 살지 않도록 말이다.
살피고 헤아려 내 삶을 좀 더 풍성해지도록 하자.
그렇게 살아 오늘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