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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났다고 쓰는 나에게

경험 넘어 생각 쓰기

by 행복해지리



강력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쉽게 주절주절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긴 것들을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적어내면 그만이다.

맛깔나게 다듬어 쓰는 것도 실력이겠으나 경험을 쓰는 건 분명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경험을 옮겨 적는 일보다 한 단계 나아간 건 그 안에 의미를 찾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쓸 때 사실만 쓰지 말고 감상을 적으라고 하면 매양 '재밌었다'로 귀결돼버린다.

무엇이 재미있었고 즐거웠는지 적어보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는 듯 '저는 그냥 일기를 쓸 때 재미나다는 생각이 나길래 재미있다 쓴 것인데 왜 재미있다 생각했냐고 물어보시면 그냥 머리속에서 재미있다고 떠올라서 재미있다고 쓴 것입니다.'라고 장금이 코스프레를 해낸다. 그러니 그저 즐겁고 신나는 혹은 슬펐던 경험을 더 파헤쳐 왜 그러했는지 감정을 파해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대답한 장금이처럼 같은 말 돌려 막기를 하지 않으려면 꾀나 신중하게 제 속을 들여다보고 집중해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조심히 제 속을 들여다보고 딱 맞는 단어를 꿰어 글로 표현하는 건 꾀 오랜 수련이 필요한 일이다.



요즘 집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기처럼 경험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글에 생각을 새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종일 머릿속의 분주함은 감수해야 한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던 일상은 수만 번 반복한 행동이라 굳이 사고 과정은 필요하지 않다.

그리 편하게 살면 좋겠으나 글을 써보겠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놓은 다음에는 그럴 수 없는 거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말했다는 식의 돌려막기를 시전하지 않기 위해서는 왜 홍시맛이 난 것인지 밝혀내기 위해 맛보는 동안에도 분주히 탐색하며 바삐 궁리해야 한다.

자초한 일이라 누굴 탓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중도하차는 있을 수 없으니 입꾹하고 즐겨보려 애쓴다.



그렇게 종일 뇌를 수선스럽게 괴롭히며 글 생각을 한 탓인가?

식탐이 늘었다.

그만큼 뱃살도 늘었다.

뱃살의 원인을 글쓰기에 덮어씌운다.

몸뚱이를 희생하면서 쓰는데 글솜씨는 늘지 않는 것이 애통할 뿐이다.

홍시 맛이 왜 홍시맛이 나는지 밝히 내려는 노력에 더 힘써본다.

그렇게 글솜씨를 늘어야 후덕해진 내 몸에 대한 면피를 줄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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