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
'글짓기'라는 흔한 단어를 보다가 갑자기 '짓기'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 글은 펜을 들고 쓰는 것인데 (물론 요즘은 타닥타닥 두들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글을 짓는다'라고 표현한 의도가 궁금했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글을 쓴다', '글을 짓다'를 모두 읊조려보니 '짓다'라는 표현이 훨씬 정성이 깃들고 노력이 보이며 애정 어린 느낌이 든다.
'짓다'라는 동사를 어디에 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더니 더욱 놀라웠다.
새끼들을 위해 밥을 짓고, 옷을 짓는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무리를 지어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짓는다.
한동안 공들인 일을 오늘에야 매듭짓고 드디어 마무리 짓게 되었다.
시나 소설을 지을 능력이 안되니 퍽 난감해서 샐룩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는 죄를 지은 것이 속상해서 오전 내내 한숨을 지었다.
오호라
'짓다'는 참으로 다양하게 쓰이며 활용도가 높은 단어였다.
이렇게 가성비 넘치는 단어가 있다니.
새삼 '짓다'가 기특해진다.
'짓다'는 자기 자신을 붙여 다른 여러 단어들의 뜻을 살려준다.
'밥 한다'라고 하면 의미 없이 제 할 일을 하는구나 싶은데 '밥을 짓는다'하면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마무리 한다'라고 하면 보통의 끝맺음을 말하지만 '마무리 짓게 되었다'하면 그간의 노고가 녹아있음이다.
저를 보태어 앞선 단어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짓다'의 능력이 뾰족하게 놀라웠다.
그동안 '짓다'라는 말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내가 둔해서라기보다 '짓다'가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는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돌아본다.
지금껏 '짓다' 만큼은 아니더라도 두루 쓰이며 어디에도 적합한 쓰임을 발휘하였던가 자문했지만 전혀 아니다.
'짓다'처럼 조력자가 되기를 자처하기보다는 나를 내세우기에 급급한 삶이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뒷전이고 해낸 것보다 더 많이 인정해 주길, 성과에 앞서 나를 알아봐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글자의 뜻 하나를 곱씹어봤다고 그간 살던 나의 행적들이 고쳐질리는 없겠지만 톡톡히 반성은 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살아야 잘 지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