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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가 싫다면서 난 왜 쓰는 거니

by 행복해지리



줄넘기가 싫다.

근본적으로 재미가 없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지루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줄넘기를 못해서 싫어한다고 의심하면 곤란하다.

타고나길 겁이 많아서 공이 날아오는 종목에는 취약하지만 운동 신경은 있는 편이다.

체력장이 있던 시절 제자리멀리뛰기·윗몸일으키기·오래달리기·팔굽혀매달리기 따위의 종목을 두루 잘해 1급 넘어 특급을 받던 여자 사람이다.

나이를 먹고도 줄넘기하는 폼이 여적 가벼워서 몇 해 전 아들 다니는 태권도장 학부모 참여 수업에서 줄넘기당당히 1등하고 잡곡을 부상으로 받은 바 있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실력을 입증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줄넘기를 못해서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를 강조한다.

그저 재미가 없다.



반면 달리기는 좋다.

출발과 동시에 내가 잘 달리면 지켜보는 이들이 즉각 반응해 주니 신난다.

그 짜릿함 함성에 취해 팔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게 되고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줄넘기를 해도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달리기를 해도 심장 박동은 빨라진다.

그런데 줄넘기는 재미가 없으니 심장 박동이 조금 격하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고 멈춰버린다.

하지만 달리기는 함성을 더 받고 싶은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다리로 전송하고 골인 후 장렬히 쓰러지는 거다.

초중고(난 국중고 라고 해야 맞겠지만) 12년과 대학 새내기 시절까지 모든 체육대회에 계주 대표로 참가했었다. (종종 난 이 과거사를 스스로 떠벌려 환호를 구걸한다.)

평균보다 짧은 다리 길이를 극복하고 힘껏 땅을 박차고 갈지자로 휘젓는 속도는 제법 빨랐다.

사실 잘 달려서 빨랐다기보다 빨리 달려서 칭찬받고 싶어 기를 쓰고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몸짓이었다.



줄넘기는 싫고 달리기는 좋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

결과 지향적이고 외부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이 공개적으로 글을 발행한다.

글쓰기 실력을 수련하고 배우고자 노력하지 않으면서 글을 오픈함과 동시에 즉각적인 반응을 기다리며 울고 웃는다.

틈만 나면 조회수를 확인하고 공감하트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다.

구독자가 한분 늘어나면 환호하고 어쩌다 줄면 입이 삐죽 나와 투덜거린다.

겉으로는 얌전한 척, 점잖게 행동하지만 실상은 똥 마려운 강아지 모냥 스마트폰을 쥐고 새로고침하는 모양새가 우습기 짝이 없다.



줄넘기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줄을 돌린다.

봐주는 사람이 있건 없건 목표한 개수를 채우기 위해 돌려야 한다.

제 발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시작과 같은 속도와 자세로 줄을 돌려야 하는 거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시나브로 단단해져 나가길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재미는 없으나 분명 실력은 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심히 반복하다 보면 둔하고 무겁던 몸이 점차 가벼워진다.

처음에는 겨우 백개 뛰던 것이 어느새 수백 개를 연이어 뛰는 실력을 갖춘다.

기술도 늘어나 한 번에 한 줄 밖에 넘지 못하던 것이 어느새 발 바꿔 뛰고 2단 뛰기도 가능해질 것이다.



밋밋한 삶에 글무늬를 넣겠다는 작가 소개를 적었다.

실상은 속물이나 아닌 척 얌전하게 나를 포장하는 멘트였다.

나만의 글무늬라는 것이 쉽게 만들어져 금세 그럴싸해질 줄 알았다.

허나 글쓰기 실력은 여적 늘지 않아서 흐릿한 무늬도 만들지 못했다.

달리기가 좋지만 줄넘기를 해야 한다.

글을 쓰고자 함이 눈 앞에 보이는 100m 골인 지점까지만 냅따 달려고 끝나는 달리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매일 꾸준히 약속한 만큼의 줄을 돌리고 그 줄을 넘고 넘어야 하는 줄넘기였다.

지루하지만 그걸 해내야 속 터질 정도로 천천히 글쓰기 근육이 늘고 오래가는 지구력이 쌓일 거다.

아직 비루한 글쓰기 능력도 매일 줄넘기처럼 해내다 보면 어느새 이단 뛰기 같은 실력이 갖춰지길 테고 말이다.


별 수 없다.

작기가 되고 싶으면 써야지.

줄넘기하듯 지루하게.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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