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엄마 아빠 단골집이야?
근데 단골이 뭐야?
단골의 기준이 무엇일까?
처음 와본 이후 22년 동안 4번 방문했으니 방문한 횟수가 기준이면 우린 단골에서 탈락이다.
하지만 영월에 오거나 혹은 지나게 되면 응당 방문하는 곳이니 정해놓고 찾아가는 것이 단골이라면 우리는 이 집 단골이 맞다.
그곳은 바로 영월 장릉 보리밥집 이다.
남편과 내가 처음 이 집을 알게 된 건 대학 새내기 시절이다.
강원도 지역 정기 답사를 하던 중이었다.
아직 초딩 입맛일 때라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보리밥을 먹는다 해서 썩 내키지는 않았다.
허나 당시 메뉴 선택에 0.000001%도 영향력이 없던 시절이라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소박한 밥상에 무심한 반찬들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맛을 의심했다.
그날 감자와 함께 나온 보리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워냈고 나오면서 식당 이름을 외웠다.
또 오고 싶었으니깐.
수년이 흘러 28살 되던 해 내 첫 자가용이 생겼다.
연애 중이던 남편과 내 생일을 맞아 영월로 여행을 왔었다.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왔던 영월이 좋아서 계획한 여행이었는데 영월 하니 학부 때 먹었던 그 맛있던 밥이 같이 출력됐다.
다만 외워두었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용케 떠올린 장릉이라는 단서에 의지해서 무작정 도로지도를 보고 장릉을 찾아갔다.
(장릉,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능이다.)
다행히 세월은 꾀 지났는데 동네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예전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이라 식당이 있었다.
다시 먹어도 꿀맛.
결혼하고 아이들이 좀 자란 후에 친정 식구들과 함께 태백 여행을 왔다가 세번째로 장릉 보리밥집을 찾았다.
징검다리 연휴였던 터라 대기를 한참 해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엄마는 뭐 대단한 거 먹을라고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타박을 해놓고는 나오면서는 간만에 진짜 잘 먹었다며 만족해하셨다.
이후에도 서너 번 더 왔었으나 보리밥을 먹지는 못했다.
주로 여름 휴가철에 인근에 방문했다가 찾아왔고 인터넷 정보가 늘어나면서 어느새 맛집으로 소문나 대기가 점점 심해졌다.
한여름 땡볕에 어린 아이들과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왔으나 포기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보리밥집과 마주 보고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집도 맛집이었다.
이후에는 보리밥집에 왔다가 대기가 길면 바로 맞은편집에서 불고기 전골을 먹고 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올해 4번째 보리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남보다 이른 휴가를 즐기고 돌아가는 길에 들린 장릉 보리밥집은 다행히 점심때를 지나 한산했다.
감자가 들어간 보리밥에 반찬과 막장을 넣어 쓱쓱. 고추장 범벅의 비빔밥과는 차원이 다른 깨끗한 비빔밥이 된다.
간만에 맛보게 되서 들뜬 부부와 달리 평범하고 무난한 반찬들이 상에 놓이자 아들은 고기 반찬이 없다고 입이 삐죽 나온다.
풀떼기를 싫어하고 매운 건 먹지 못하는 딸은 아예 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입틀막을 하고 계신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부부는 신나서 서둘러 보리밥에 반찬들을 넣고 슴슴하게 막장을 넣어서 쓱쓱 비볐다.
다 비벼봐도 색은 흐릿하고 향도 별게 없는데 입에 들어가면 오묘하게 간이 맞고 물리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고기 타령을 하던 아들 입에 억지로 한 숟가락 쑤셔 넣었더니 다음부터는 알아서 퍼먹기 시작했다.
제법 고집스럽게 거부하던 딸도 비비지 않은 보리밥에 된장찌개 두부를 건져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두부구이와 감자메밀전을 시켜줬더니 그건 또 접시를 끌어안고 먹어서 결국 추가 주문을 해야 했다.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장릉 보리밥집 음식들은 맑고 정갈하게 맛있다.
맛 뿐만 아니라 모두 국산 재료를 사용하니 건강에도 으뜸일게다.
그럼에도 추억이 담겨서 더 맛있다.
파릇하던 새내기 때의 추억 한 수저, 연애시절 오붓하던 추억 한 수저, 멀리 영월까지 와서 엄마와 함께 먹은 추억 한 수저 더해진다.
이제는 밤톨 같은 아이들이 코박고 먹는 추억까지 더해져 아련한 향이 날꺼다.
단골이 별거인가
드물게라도 생각나서 찾아오면 단골이지.
다음에는 오늘보다 훌쩍 자란 아이들과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는 사진 속 꼬꼬마를 추억하며 보리밥에 추억까지 넣어 야무지게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