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사랑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첫사랑이라니, 그저 단어를 보기만 해도 낯선 간지러움이 올라온다.
돋아난 닭살을 떨치려 살짝 몸을 떨어줬다.
허나 싫지만은 않았다.
건조주의보 내려지게 퍽퍽하게 갈라지는 일상에 첫사랑의 이슬비가 내리니 간만에 촉촉함이다.
그 시절은 생각만 해도 참 달다.
그런데 글은 쉬 써지지 않았다.
모니터 속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며칠을 노려봤지만 몇 칸 나아가다 다시 빽하기를 반복하며 끝내 첫 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었다.
첫사랑을 떠올리면 딱 한 사람으로 귀결되는 탓에 주인공 설정은 쉬웠다.
그런데 임팩트 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다.
내 첫사랑이 이렇게 밋밋했었나?
그러다 문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화장대 서랍에 박혀있던 첫사랑의 손편지였다.
무려 그이가 군대에서 건빵 속 별사탕으로 하트를 만들어서 보낸 편지였다.
슬쩍 서랍 속에 넣어둔 편지를 꺼내보았다.
나는 강산이 두 번 뒤집히는 세월을 혼자 뒤집어쓰고 폭삭 늙었는데 편지는 그때 그대로였다.
조악하게 붙인 별사탕도 서랍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피했는지 용케 아직도 붙어 있었다.
편지는 '나 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라고 시작한다.
마저 읽지 못하고 잠시 머뭇댔다.
습기가 메말라 퍽퍽한 아줌마에게 과도한 오글거림이 찾아와 차마 똑바로 읽을 수가 없었다.
끝내 곁눈질로 비스듬한 시선을 하고서야 편지를 마저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별사탕 손편지 덕분에 퇴화된 줄 알았던 갬성이 살아났다.
드디어 첫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지작거린 게 문제였나 보다.
그만 20년이나 버텨준 별사탕 하나가 떨어져 버렸다.
어서 붙여야겠다는 마음에 냉큼 편지와 별사탕을 챙겨 남편에게 달려갔다.
자기야, 이 별사탕 좀 붙여줘.
처음에는 남편은 별사탕과 편지를 받아 들고도 심드렁했다.
별 관심 없이 별사탕을 붙여달라는 지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 편지를 작성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크게 움칠한다. (풉)
원래 자기의 오글거림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매우 힘든 법이다.
그것도 20년의 세월을 건너 마주한 끈덕진 달달함은 꾀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미안,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어.
이걸 왜 꺼내왔어?
당황스러움을 성질부리기로 받아치는 분이 내 첫사랑이시다.
나도 드라이하게 첫사랑 공모전에 글을 내려고 궁리하다가 이 편지가 생각났다고 사실을 고지했다.
그리고는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서 편지를 한번 읽어보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아예 몸서리를 친다.
그때 뭔가 재미난 것이 있다는 걸 눈치챈 남매가 우르르 몰러왔다.
(아들) 뭔데, 그게 뭐야? 나도 줘봐.
말보다 먼저 손을 뻗어 빨간 편지지를 낚아채려던 아들은 아빠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편지를 숨기고 아이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위기를 모면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있다.
좀 더 괴롭히고 싶었으니 그간의 의리를 생각해 남편을 구해주기로 했다.
별사탕을 20년째 붙어있던 제자리에 안착시켜 준 것으로 만족하고 소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편지는 다시 서랍 속에 잠들도록 넣어두었다.
일상의 달달함이 부족할 때 다시 꺼내보리라.
또는 남편을 괴롭힐 때 낭독해줄까 싶기도 하다. (❛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