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해지리 Sep 26. 2023

캠핑장에서 북클럽 해봤나요?



그것도 챙기게? 


그렇지 않아도 맥시멈 리스트 캠핑족이다. 

바쁜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퇴근하며 바로 캠핑장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옮기는 중이었다. 

트렁크와 루프백도 모자라 아이들 자리까지 짐을 실었는데 그 와중에 노트북까지 챙기니 남편이 어이를 찾는 표정을 짓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미안, 근데 나 오늘 북클럽 하는 날이야.   


사브작 북클럽


그 시작은 작년 12월 마지막 금요일 밤이었다. 이후 2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독서 모임을 가져왔다. 

같이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간 19권의 책을 함께 읽고 나눈 대화와 독서 모임을 향한 우리 맴버들의 열정은 기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시간은 짧았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까지 생면부지였던 우리를 단단히 묶어놓기 충분했다.  

캠핑장에 가서도 독서 모임은 빠질 수 없을 만큼. 

학창 시절, 친구들이 놀러 가는데 나만 빠지면 큰일 날 거 같던 그 순수한 마음과 닮았다. 

게다가 이번 회차는 내가 선정한 책과 발제한 질문으로 진행하는 날이니 더욱 불참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피칭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해치운 후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일이 있을까 싶다. 

연애 10년 + 결혼 12년 동안이나 나를 보아왔던 남편도 생소한 모습일 거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앉아서 설레며 북클럽을 준비하는 나를 그가 본다. 

캠핑장에서 북클럽하겠다고 설치는 모습에 기가 찬 듯도 했고, 몰입하는 내가 낯설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진지하다.      






9시 30분 드디어 시작이다. 


내가 선정한 책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였다. 

이 책의 작가는‘삶을 더 순조롭게, 자기답게 살아라.'라고 조언한다. 

문장은 명료했지만 내 삶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기답게’라는 말에 쉽게 무엇도 생각나지 않아 애를 먹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지난 10여 년간 의식적으로 나를 억누르며 살았기에 나다운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를 잊고 살아야만 갑자기 주어진 엄마, 주부라는 낯선 역할을 그럭저럭이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마땅히 해내야 하는 소명이었고 그로 인해 행복했다.


그런데 책에서 ‘자기답게 살아라’라는 문구와 마주할 때마다 뒤늦게 그동안 나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자기답게’라는 물음에 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늘 생각이 제자리에 머무르는데 북클럽에서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다 보면 막혀있던 생각의 돌파구를 찾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북클럽 대화가 누군가의 말에 조건 없이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원래 유난스럽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남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말을 꺼내놓고도 후회하기 일쑤다. 

괜한 말을 한 건가 아닌지, 상대방이 기분 나쁜 건 아닌지 눈치 보기 급급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브작 북클럽을 하는 동안은 달라진다. 

내 안에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북클럽 시간에 난 평소보다 훨씬 수다스럽다. 

남을 살피지 않고 내 생각들을 엮어 말로 이어놓다 보면 막혔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뻗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해답을 얻는 것이다. 


오늘도 혼자였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을‘자기답게’라는 물음에 답을 북클럽 시간에 얻었다. 

맴버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편안함에 기대어 슬며시 내 본심을 귀 기울여본다. 

그러면서 나다움은 지난 10년간의 세월에 바래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요즘 나는 북클럽을 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새롭게 써 내려갈‘자기답게’를 위해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한다. 

여전히 여러 역할을 해내느라 24시간을 허덕이며 바삐 살지만, 그 속에서 시간을 쪼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2주마다 독서 모임에서 책 대화를 나누며 나를 찾는 시간에 빠져든다. 

잃어버린 10년의 나다움에 아쉬워하기보다 북클럽과 함께 새로 만들어갈 나다움이 더 기대하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했지만 독서 모임은 이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 되었다. 

책을 읽는 순간이 좋고 함께 책 대화를 나누는 동지들이 생겨서 든든하다. 

누구나 사는 동안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사브작 북클럽이 그렇다. 

그 속에서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그동안 사라졌던 나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읽은 책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힘이 되어 준다. 

그러니 북클럽을 빠지는 일은 생각하기 힘들다. 캠핑장 아니라 캠핑장 할아버지를 가서도 북클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왜 읽는지,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읽기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혼자 읽기보다는 함께 읽을 독서 모임에 참여하라고 주변 사람들을 부추긴다

독서 모임은 분명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열어줄 것이다. 정확한 이정표도 없고 확실한 안내서도 없는 인생에 책과 독서 모임은 뚜렷한 길잡기가 되어줄 것을 확신한다. 

우리 독서 모임의 다음 책은 ‘베테랑의 공부 (임종령)’이다. 

책에 흠뻑 빠져서 읽었고 발제문을 보며 설레며 금요일 밤을 기다린다. 

당신도 이 설렘을 느껴보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도 꿈이 생겼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