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할 수 있어
게다가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도 아니고, 두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도 아니니 고생스러운 시간이겠구나 걱정도 되었다.
연휴 끝나기 전에 감을 잡으려나?
오늘 보호 장구를 못 챙겼는데 많이 넘어지면 어쩌지?
한두 번 넘어지고 겁먹어서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되는데
자전거 잡아주다가 손목에 무리가 돼서 엄청 아플 텐데 큰일이다....
꼬리를 무는 걱정들을 안고 연습하려는 공터에 도착했다.
역시나 처음에는 감은 잡지 못하고 연신 비틀거린다.
페달조차 쉽게 앞으로 돌리지를 못하니 잡아주는 손목에 벌써부터 통증이 전해졌다.
그런데 십여분 쯤 버벅거리던 아이는 어느새 페달을 돌리는 것에 익숙해지더니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말라고 핸들 한쪽과 안장 뒤편을 잡고 있던 나는 아이의 자전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자전거에 매달려 달리는 형국이 됐다.
이 때 자연스럽게 아이를 믿고 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했는데 내가 놓으면 넘어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놓을 수가 없었다.
끝내 자전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다리가 꼬여서 아이와 같이 넘어지고 말았다.
이후에는 계속 아이 자전거에 매달려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더니 내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숨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려는데 아이는 혼자 출발 연습을 해보겠단다.
엄마가 안 잡아주면 절대 균형을 잡지 못할 거라 여겼지만 속마음을 감추고 응원했다.
응원의 본질은 지지보다는 격려에 가까웠다.
아이 혼자서도 자전거 타는 법을 깨칠 거라는 믿음의 응원이 아니었다.
쉬지 않고 시도하는 모습과 엄마 없이 용기를 내는 행동에 대한 응원이었다.
아직은 엄마 도움이 있어야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이다.
땅에 딛고 있던 발을 떼자마자 균형을 잃었다.
딛고 있는 발을 떼는 동시에 반대발은 페달을 굴리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요령을 알려줬다.
그러면서도 넘어질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몇번만 혼자 하게 두고 곧바로 내가 가서 잡아줘야겠다고 부릉부릉 시동을 걸던 참이었다.
그런데 땅을 딛고 있던 발을 떼면서 동시에 페달을 움직이는 것이 엇박자가 나기를 몇번 반복하더니 어느새 두발이 합이 맞기 시작했다.
그러다니 어느새 스스로의 힘으로 자전거를 출발시켜서 수미터를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성공이었다.
얼떨결에 거머쥔 성공에 본인도 놀랐는데 얼마 못가서 스스로 발을 내려 자전거를 멈추게 하기는 했지만 분명 첫 두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후에도 아이는 혼자서 연습을 이어갔다.
문제는 장소였다.
하루 연습으로 자전거를 타게 될줄 모르고 직선거리가 짧은 공터를 잡는 바람에 오히려 연습에 방해가 되었다.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직선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얼마 못가 멈춰야 했고 브레이크 잡는 것이 서툴어서 연신 넘어졌다.
넘어지고 나면 겁을 먹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없이 몇번 더하면 멈추는 것도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오뚜기 처럼 일어섰다.
난 하릴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오늘 알았다.
두발 자전거 타는 일은 엄마인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줘야 가능한 것이라 여겼으나 완벽한 오산이었다.
며칠은 걸려야 감을 익힐 거라는 성급하게 속단했는데 1시간도 안 되는 시간만에 직선코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처음부터 안전하게 넓고 멀리까지 달려나갈 수 있는 공간을 택해서 연습을 했다며 오늘 아이는 더 자전거를 많이 배웠을텐데 섣부르게 아이의 가능성을 속단하는 바람에 기회를 빼았아버렸다.
엄마는 어리석었고 아이는 용감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이는 수다쟁이였다.
처음 해낸 두발 자전거 타기의 짜릿한 성공에 대한 흥분이 전해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손목을 본다.
미리 붙여놓은 손목에 파스가 무색하다.
파스를 떼어내며 용감하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던 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이제 나 자전거 탈 수 있어.
그래, 아가 넌 뭐든 할 수 있어.
도움없이 혼자서 말이야.
이젠 엄마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