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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먹을 때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마음 읽기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 처럼요.

by 행복해지리


그거 아세요~?

단체 급식에서 자율 배식을 하는 경우, 국을 퍼 올릴 때 기술이 필요합니다.

국자로 바닥을 훑어내는 정성이 그것입니다.

그래야만 건더기를 많이 먹을 수 있어요.

국자로 국통의 위쪽만 슬쩍 퍼올리면 국자 안에 국물뿐이고 건더기가 함께 오지 않습니다.

무게가 있는 건더기는 바닥에 모두 가라앉아 있거든요.


학기 초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급식 메뉴는 제가 애정하는 순댓국이 나왔어요.

좋아하는 메뉴라 마음을 담아 국자를 깊~게 찔러서 바닥을 긁었습니다.

역시나 퍼올린 국자 안에는 순대와 고깃덩이가 골고루 섞이고 가라앉아 보이지 않던 들깻가루까지 적절히 담겨있었습니다.



바닥을 긁어내면 이렇게 건더기 듬북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맛있겠죠?



만족스럽게 식판을 채우고 자리에 앉아서 옆자리 초임 발령 선생님의 급식판을 봤더니 아구야! 건더기 하나 없이 멀건 국물만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직 국자로 바닥을 훑어내야 하는 스킬을 모르고 계셨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조용히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선생님, 국풀 때 꼭 바닥을 훑으세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도 같습니다.

내면의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차분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감정을 조심히 훑어야 합니다.

자칫 서툴게 마음을 읽으면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보게 됩니다.


저도 마음을 살피는 것에 서툴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축 쳐진 날이면 우울하다는 감정은 느껴지는데 그 이유를 몰라 더 속상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에게 서운한 마음이 일었는데 무엇이 서운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억울하기도 했고요.

가려운데 어디가 가려운지 알지 못하면 정말 답답합니다.

막힌 속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무턱대고 아무 대나 막 긁어봅니다.

그래봤자 가려움은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영 엉뚱한 곳만 긁어대다가 생채기를 만들곤 합니다.

내 마음인데, 내 것을 읽어내는 방법을 몰라 막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훑어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글을 쓰려고 하던 초기에는 엉클어져 복잡한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하나 둘 방법을 터득하게 되더군요.

내 마음을 글로 옮기려면 질서 없이 떠도는 상념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두루뭉술한 마음 한 가닥을 잡고 요리조리 살펴 면밀히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상태에 알맞은 단어를 붙여주면 그제사 마음이 선명해집니다.

차분하게 이 과정을 이어갑니다.

혼돈의 마음이 점차 조용해지고 조금씩 바닥에 내려앉는 덩어리가 생깁니다.

그것이 내 마음의 알맹이입니다.

다시 한번 그것을 조심스레 훑어냅니다.

섣부르게 분탕질해서 다시 마음속이 불투명하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살핍니다.

그렇게 살뜰히 마음을 살펴 글로 옮기게 되면 어느새 내 마음의 깊은 곳에 가 닿아 있더군요.

그렇게 글 쓰며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이해하고 싶을 때 한 편의 글을 써보세요.

적어도 1,000자 이상의 완성된 글이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한편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세요.

그렇게 딱 10편의 나에 대한 글을 작성해 보시길 권장합니다.

10편의 글 안에서 나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순댓국의 순대는 바닥에 있답니다.

국자를 깊숙이 집어넣어야 건질 수 있음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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