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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04. 2024

아들의 방문에 붙여진 안내문 혹은 경고문

건들면 물어요



'지도 공부하기 싫겠지' 싶은 생각이 아주 잠시 뿐이었다.

'뭘 했다고 쉰다는 거야' 괘씸함이 용솟음쳐 오른다.

당장 노크를 흉내 낸 주먹질과 함께 고함을 질러 잠긴 물을 열고 싶지만 진짜 물릴까 봐 참기로 했다.

테이프로 간신히 매달려 있는 타이머에 남은 시간은 16분이었다.



국민학교 입학 이후 지금까지 학교를 다녔다.  

그 시간이 학생으로 16년, 그리고 교사로 20년이다.

이 정도 세월이면 서당 앞에서 풍월을 읊던 댕댕이도 천자문 강의 하나 맡아 떠들 수 있을 세월이다.

내 혈액에 남들 다 있는 피 사총사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혈장 외에도 교육이라는 녀석이 하나 더 둥둥 떠다녀도 하나도 이상하지 시간이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게 넘쳐흐를 만큼 교육이라는 틀 안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교육은 힘들다.

괜히 집공부 한다고 설치는 건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방학에는 특히 그렇다.



내가 교사라서 가장 고마운 때는 단연, 방학이다.

단순히 긴 시간 출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아이들이 방학한 동안 함께 집에 있어줄 수 있음에 대한 감사다.

하지만 인간은 제법 간사한 동물인지라 감사함은 짧고 현실의 굴레 앞에 항상 불평은 길다.

돌밥돌밥돌밥의 운명은 차치하고 집공부하는 남매를 종일 붙들고 있으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교사 엄마가 초등 남매를 집공부하고 있다고 하면 '애미가 교사니 쉽겠지', '가르치는 게 업이니 당연한 거 아닌가'하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교사지 집에 오면 그저 엄마다.

교사라는 직함이 주는 작은 권위마저 없이 그저 앞치마 입고 앉은 일상의 엄마로서 아이들 공부를 이끌어 가는 건 쉽지 않았다.

대체로 윽박과 협박, 눈빛광선과 고함을 사용해서 겨우겨우 끌고 가는 중이다.

오늘도 그런 보통의 날 중 하나였고 해 있는 동안 제대로 한 거 없이 빈둥대다가 깜깜해지고 나서야 시작한 공부였다.

초등 남매와 엄마가 식탁에 앉아 각자의 것을 하고 있던 잠시 멍 때리는 사이 아들이 자리에 없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방문 앞에 가보니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쉬는 중 (25분) - 왜 하필 25분인지는 모르겠다, 자기도 모른단다.
(주의 건들면 물어요) - 물어요를 처음에는 울어요로 읽었다. 울어요는 슬펐는데 물어요는 웃긴다.


경고를 무시하고 문을 두드린 남편은 진짜 물렸다.




아이 문 앞에서 16분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맘을 고쳐먹자.

감사한 일이다.


공부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고 쉬겠단다, 감사하다.

6학년이 되는 겨울방학이라서 학습량을 제법 늘렸는데 매일 다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2/3는 해내고 있다, 감사하다.

자신의 TODOLIST를 모두 채우면 뿌듯해한다. 성취감을 즐기는 것에 감사하다.

아직도 할 일을 미루긴 하지만 게임은 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

여전히 잔소리를 베이스로 해야 공부하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할 공부를 해내려고 아등바등거리는 것에 감사하다.



15분 후.

타이머가 띠띠띠띠 울리며 바르르 떨었다.

겨우 매달려 있던 테이프는 알람 진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툭! 타이머를 놓아버렸다.

중력 방향으로 낙하한 타이머가 깨개갱 떨어지며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방문이 열렸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타이머를 주워 들고 아들이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식탁에 복귀했다.


잘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


준비하던 잔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다.

물리지 않았다.

슬쩍 보니 자유낙하한 타이머도 무사한 것 같다.

아들은 방문을 걸어 잠그기 25분 전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이다.

그럼 되었다.

이렇게 오늘 공부도 완료했다.


#오공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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