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씻고 싶습니다
도로 통제가 해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도 차를 세우고 도로에 나와 서성이는 걸 보니 길어 질 듯했다.
1시간 정도만 가면 스테판츠민다 숙소인데, 씻고 싶은데...
씻는 게 이렇게 간절한 건 태어나 처음이다.
극한의 순간 사람의 소망은 참 소박해진다.
그저 씻고 싶다.
이 꿉꿉함에서 벗어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도로에서 기다리기를 1시간.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첫 번째 숙소까지 곧장 가자는 계획을 접고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른 아침 조지아에 도착해서 바로 렌트해서 쭉 달려온 길이다.
오는 길에 마을 시장에서 과일을 좀 사먹긴 했지만 아직 식사다운 시간은 없었다.
겨우 문 연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식당까지 가는 길도 눈길을 헤치고 들어가야 해서 쉽지 않다.
이런 눈을 만날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우리는 평범한 운동화 차림이었다.
눈 속에 발이 푹푹 들어가는 험한 길을 헤치고 들어간 식당은 안타깝게도 조지아에서 먹은 음식 중 유일하게 그저 그랬다.
음식이 좀 차고, 간도 맞지 않았다. (이후 조지아에서의 모든 식사는 완벽했다)
다행히 풍경을 찬 삼아 눈부신 설경에 취해서 먹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던 식사.
식사를 마치고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 없이 천진난만한 척 눈 위에 벌러덩 누워본다.
아구 내 허리.
이미 꾀 다져진 눈은 푹 꺼지기는커녕 딱딱해서 허리만 아팠다.
당장 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눈 구경하며 태평했다.
인천을 출발한 지 3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으니 아마도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다시 도로와 나와봤으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시 1시간이 더 대기했다.
이제는 우리 뒤로도 꼬리가 길게 늘어나 있었다.
구리우리 정상 부근에 도착한 지 이미 3시간.
그제사 우리들의 큰언니가 뚜벅뚜벅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우리는 출발할 수 있었다.
'언제 갈 수 있어요?'
'왜 안 갔어? 갈 수 있음 싶음 가도 돼'
What?
가도 된다고?
왜 가라고 말 안 해줬어?
다른 차들은 왜 안 가는 거야?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처음에는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서 통제한 게 맞다.
그런데 우리가 구다우리에서 3시간 대기하는 동안 도로 사정이 나아진 것이다.
지금은 차량을 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상황.
그런데 현지 경찰은 굳이 운전자들에게 가라고 지시하지 않았던 것.
가고 싶으면 가도 가라는 쿨내 나는 경찰 나으리.
순둥이 현지인들은 앞차가 서있으니 그냥 서있던 거다.
경찰은 굳이 적극적으로 가라고 지시하지 않고 운전자에게 불필요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우리도 한국이었다면 3시간씩 처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낯선 외쿡이라서 본성을 누르고 없던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저 기다렸던 것.
뭐야~ 이 나라.
토 테러로 시작한 조지아 여행은 한나절 만에 또 새로운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암튼, 출발 !
우리가 가니깐 뒤이어 대기하던 차들도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따라온다.
우리가 대장이 되어 구다우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 우리를 따르라.
이제 스테판츠민다로 간다.
진짜 얼마나 좋으려고 이러는 걸까.
별거 없으면 진짜 가만안둘테다.
* 여행 이야기가 바닥날 때까지 토요일에 글을 발행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