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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Jul 04. 2024

어딜 만져요


만졌다.

순간이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신고되었고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5분.

5분 후, 집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늦은 오후 기분 좋게 남매를 데리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특별전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을 보기 위해.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남매는 즐겁게 관람을 했다.

대 자연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배우기 바랐던 사람들, 북미 원주민.

넓은 북아메리카 대륙을 무대 삼아 각기 다른 곳에 적응하고 살았던 사람들.

사는 곳에 적용하며 형성한 다양한 문화를 한데 모아 두니 볼거리가 풍성한 전시였다.

게다가 직관적이고 자연 진화적인 북미 원주민의 문화는 초등 남매가 보고 느끼기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집 기둥으로 사용된 토템상
다양한 의상 중 딸아이가 가장 맘에 들어한 초록색 드레스는 크로족 의복으로 거대사슴의 이빨로 장식되어 있다.
무엇으로 보이실지? 북미원주민의 아기 요람이다.




초등학생들이 전시를 보고 문제를 풀면서 북미 원주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더 관람이 즐거웠다.

8개의 아이템을 모두 획득하리라.

시작부터 열정적으로 관람한 따님.

큰 아이는 자유롭게 관람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관람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곳곳에 새겨진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들의 잠언이었다.  

북미 원주민의 잠언은 한결같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미사여구 잔뜩 넣어 화려하게 꾸며놓은 문장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잔뜩 힘을 준 문장도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하지만 통찰력 있게 담아놓은 문장들은 힘이 있었다.

딸이와 함께 글귀를 서로에게 읽어주며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전시 관람을 이어갔다.


 






북미 원주민의 생활을 담은 사진을 보던 그때.

직원이 날 찾아왔다.

"아이 보호자 신가요? "

직원은 딸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딸아이가 내 등뒤에 있는 액자 속 미술 작품을 손으로 만고 지금 학예사가 작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오고 있다고 했다.  

아이는 긴장감에 얼어붙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황.

좀 전까지 손잡고 같이 전시를 보고 있었는데.

앞서 전시를 보는 내내 작품을 보호하고 있는 유리도 만지면 안 된다고 당부했는데.

작품에 바짝 다가가지 말고 한 발자국 물러서서 보라고 주의를 줬는데.

잠깐 손을 놓은 사이 (사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자유롭게 관람할 나이다) 아이가 작품을 만진 것이다.

학예사를 기다리는 동안 한켠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어떤 연유로 작품을 만졌는지.

우느라 대답하기 어려운 아이를 달래 가며 엄마가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되물어야 했다.

"궁금했어. "

딸은 평소 규칙을 쉽게 어기는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융통성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는 아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약속에 민감한 아이인데 순간의 호기심이 이성을 이겼나 보다.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거 알아. 그런데 실수였어도 책임은 져야 해. 학예사 선생님이 오셔서 작품이 훼손 됐다고 하면 엄마가 배상할 거야. 좀 기다려보자. "

덤덤한 척 말했지만 손이 덜덜덜 떨렸다.

경주솔거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1억 원 상당의 미술 작품을 훼손한 어린이 기사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해당 사건은 박대성 화백께서 '그게 아이들이지'하며 선처해 주셨다는 훈훈한 마무리가 있었다만,

딸아이가 만진 작품은 해외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작품이었다.

5분 지나면 우리 집이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의 주인 박대성 화백은 '그게 아이들이지'하며 선처해주셨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일.

긴장해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실수였지만 그래도 책임은 져야 하는 거라며 애써 무덤덤한 척했더랬다.

학예사가 도착했다.

전시실 직원의 상황 설명을 듣고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는 그녀.

우리 모녀는 긴장감에 서로 잡은 손에 땀이 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좀 없는 곳으로 가서 말씀 나눌까요? "

헐.

사안이 생각보다 큰 건가.

남편아, 집 내놔라.

입구 가까이 사람이 드문 곳에 와서 차분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 작품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절차상 정밀 감정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묻고, 적었다.

확인 후 문제가 있으면 오늘 중 전화를 줄 것이고, 이상 없으면 전화가 없을 거라 말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딸아이를 안심시켜 줬다.

"많이 놀랐어요? 괜찮아요.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해요. 아직 다 관람하지 못했으니 다시 돌아가서 남은 관람 편하게 해도 돼요. 즐거운 관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

아이를 배려해 주는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래서 깜박했다.

그럼 언제까지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지.

몇 시까지 전화가 없으면 안심해도 되는지.

평소 국립중앙박물관 관람 시간은 저녁 6시까지.

하지만 우리가 관람을 간 날은 수요일로 저녁 9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학예사는 더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할 수도 있으니 전화가 늦으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했는지 물었어야 했다.

어떻게 관람을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닌 척, 괜찮은 척, 별일 아닌 척하며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남편에게 부탁해 족발을 시켜놓은 상태였다.

"최후의 만찬이 될 수도 있어. 잘 먹어둬. "

남편과 나는 내내 전화를 바라보며 평화 속의 긴장을 탔다.

그렇게 7시.

다시 8시.

그리고 9시.

이윽고 10시.

그제사 안심이 됐다.

다행히 집은 무사하다.


기억하자.

무엇이든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덧,

전시는 아주아주 좋았어요.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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